우리말 경전
– 불교성전
42장경-전체해설-지운스님
작성자
보리행
작성일
2005-07-15 08:10
조회
15825
< 四 十 二 章 經 >
정리 : 송광사 지운스님
<<序分>>
原文: 世尊成道已.作是思惟.離欲寂靜,是最爲勝.住大禪定,降諸魔道.於鹿野苑中,轉四諦法輪.度교진
여等五人而證道果.復有比丘所說諸疑,求佛進止.世尊敎勅,一一開悟.合掌敬諾,而順尊勅.
註釋: 四聖諦---중아함 상적유경에는 모든 짐승의 발작욱은 코끼리 발작욱에 모두 포함되듯이 붓
다의 모든 가르침은 이 사성제에 다 포함된다.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이것은 苦다. 이것
은 苦의 해결이다 라는 것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사성제의 가르침는 바로 이것은
苦다. 이것은 苦의 해결이다 라는 것이다.
進止---1)나아감과 머무름. 움직임과 움직이지 아니함. 2)기거 동작. 행동. 3)指揮.
4)卽取捨之義.謂進取正道,而捨棄諸邪也.
敎勅---가르치고 신칙함. *勅: 신칙할칙(타이름. 경계함.)
敬諾---삼가 승낙함. (諾: 대답할낙(예하고 대답함. 천천히 대답함. 공손하지 않은 대
답.). 승낙할낙(승인함).
解釋: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치시고 난뒤, 이렇게 思惟를 하시었다. 욕망을 떠난 寂靜은 가장
수승 하다. 라고하시고. 대선정에 머물러 모든 악마의 道를 항복 받으신 다음, 녹야원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바뀌를 굴려, 교진여등 다섯 수행자를 제도하여 깨닫게하였다.
다시 비구들이 있어 말하는 바의 모든 의심에 대하여 부처님에게 나아감과 머무름을 求하
므로,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경계하게하여 하나 하나 깨닫게하시니, 그들은 합장 공경하고
삼가 승낙하여 世尊의 가르침을 따랐다.
<<正宗分>>
<第一章>---出家證果(修行僧이 세속을 떠나 수행함으로써 얻는, 깨달음의 네가지를 밝힌다.)
原文: 佛言,辭親出家,識心達本,解無爲法,名曰沙門.常行二百五十戒,進止淸淨,爲四眞道行,成阿羅
漢.阿羅漢者,能飛行變化,曠劫壽命,住動天地,次爲阿那含,阿那含者,壽終靈神上十九天,證阿羅
漢.次爲斯陀含,斯陀含者,一上一還,卽得阿羅漢.次爲須陀洹,須陀洹者,七死七生,便證阿羅漢.
愛欲斷者,如四肢斷,不復用之.
註釋: 1)識心者了知心外無法,卽悟遍計本空. 2)了知境空心有,心外無法,一切皆係遍計執性,謂之識
心.
1)達本者了知心性無實,卽悟依他如幻. 2)了達境由心生,心亦如幻,一切皆係依他起性,謂之達
本.
1)解無爲法者了知眞如與一切法不一不異,卽證圓成實性. 2)解悟眞如與諸法,非空非有,不一不
異,一切皆係圓成實性,謂之解無爲法.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출가한 사문은 마음 밖에 다른 존재가 없음을
알고 존재의 본질을 통달하여 무위법을 깨달아야 사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비구 二百五
十戒를 행하여, 삿된 행위을 버리고 바른 길에 나아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네가지 성
서로운 가르침을 수행하여 아라한을 이루는 것이다.
아라한은 능히 날아다니고 변화를 자유자재하며, 한량 없는 수명을 가지며, 그가 住하는
곳에는 천지가 진동한다. 다음은 아나함이 되는 것이다. 아나함이란 목숨이 다하면 그 신령
스러운 마음은 十九天으로 올라가서 阿羅漢果을 증득하는 것이다. 다음은 斯陀含이 되는 것
이다. 斯陀含은 한번 欲界의 六天에 오르고, 한번 인간계에 돌아와서 곧 아라한이 된다. 다
음은 須陀洹이 되는 것이다. 須陀洹은 일곱번 죽었다가 일곱번 인간계에 태어나서 곧 阿羅
漢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愛欲을 끊은 사람은 마치 사지를 끊어 다시는 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第二章>---達理崇道(出家 修行者의 깨달음에는 네 가지 차별이 있으나 그 참된 이치에는 차별이
없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出家沙門者,斷欲去愛,識自心源,達佛深理,悟無爲法.內無所得,外無所求.心不繫道,亦不
結業.無念無作,非修非證.不歷諸位,而自崇最,名之爲道.
解釋: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출가한 사문은 욕망을 끊고 愛欲을 버려 자
기 마음의 근원을 알고, 佛道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무위법을 깨달아야 한다.
안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으로 구할 것이 없다. 마음은 道(眞理)에도 얽매이지 않고,
業도 짓지 않는다.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證得할 것도 없다. 여러 과
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은 것이니 이것을 道라고 한다.
講說: 깨달음을 얻고 보면 중생과 부처와 마음이 차별이 없음을 안다. 모든 존재 그대로가 부처의 모습이요 부처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무명이 있음을 현실의 苦에서 출발하여 찾아낸다. 그러나 존재의 참모습을 깨치고 보면, 무명이 본래 없음을 알아차려 진다. 때문에 안밖이나 진리나 업이나 생각이나 지음이나 닦는 것이나 증득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 따위의 모든 것이 없어진다.이러한 어떠 과정을 거쳐서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원래 무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존재의 참모습이 나타나므로 해서 존재를 왜곡하여 보는 無明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치는 이렇게 명백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깨닫지 못한 중생의 입장은 괴로움이 치열함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단계가 있고 깨달음의 성취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이 苦의 해결, 즉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까? 말하자면 방법은?
<第三章>---割愛知足(愛欲을 끊어 道를 이루는 방법을 밝힌다.)
原文: 佛言,剃除鬚髮而爲沙門,受道法者,去世資財.乞求取足,日中一食,樹下一宿,愼勿再矣.使人愚蔽
者,愛與欲也.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내 가르침을 배워 익히는 자는 세속의 온갖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빌어 얻는 것으로써 만족하라. 하루 한 끼만 먹고 나무 밑에서 한 밤을 지나되, 삼가 재차 머물지 말라.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다.
<第四章>---止惡行善(사람의 착함과 악함이 오직 그의 業에 있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衆生以十事爲善.亦以十事爲惡.何等爲十.身三,口四,意三.身三者,殺盜음.口四者,兩舌,
惡口,妄言,기語.意三者,嫉,애,癡.如是十事,不順聖道,名十惡行.是惡若止,名十善行耳.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 가지 일로써 善이 되기도 하고, 열가지 일로써 악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열가지 일인가? 몸의 세 가지, 말의 네 가지, 생각의 세 가지이다.
몸의 세 가지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과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한 짓을 하는 일이다. 말의 네 가지란, 이간질과 악담과 거짓말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꾸미는 일이다. 생각의 세 가지란, 탐욕과 성냄과 이치에 어두워 깨어있지 못한(알아차림이 없는) 어리석음이다.
이와같은 열 가지 일은 성스런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지 않으니, 열 가지 악한 행위라고 한다. 이러한 악한 일을 하지않고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면 열 가지 착한 일이 될 것이다.
講說: 善行은 戒律에 근거한다. 계율로서 善惡을 가려낸다. 이는 禪修行의 첫段階이다.
<第五章>---悔過滅罪(허물을 고쳐 착한 길로 나아가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有衆過,而不自悔,頓息其心.罪來赴身,如水歸海,漸成深廣.若人有過,自解知非,改惡行
善,罪自消滅.如病得汗,漸有전損耳.
註釋: 전---나을전, 고칠전. 頓息---止息也. 止息---머물러 쉼.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허물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허물을 그 마음에 머물게 하면 죄가 몸에 달려오기가 마치 냇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고 넓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허물이 있어 스스로 그릇된 허물을 잘 알아서 악한 것을 고쳐 착한 것을 행하면 죄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마치 병자가 땀을 내고 점차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講說: 善行은 人生苦의 病을 고치는 藥이다. 그러나 善行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존재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前提 條件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허물이 있음을 아는 것은 바로 계율로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속 윤리로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나아가는 일에는 계율이 그 檢證의 근거가 되지 않으면 않된다.
계율이란 본래 우리 마음의 청정한 모습의 작용이다. 말하자면 自性淸淨心의 淨化力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第六章>---忍惡無瞋(善은 능히 惡을 이기고 惡은 善을 부수지 못함을 밝힌다.)
原文: 佛言,人聞善,故來擾亂者,汝自禁息,當無瞋責.彼來惡者,而自惡之.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惡한 사람이 善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일부로 찾아와서 귀찮게 굴더라도, 너가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마음을 쉬어 그에게 성내거나 꾸짖지 말라. 그가 와서 미워하는 것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第七章>---謗佛招禍(위의 第六章의 견디어 참는 본보기를 밝힌다.)
原文: 佛言,有人聞吾守道,行大仁慈,故致罵佛.佛黙不對,罵止.問曰,子以禮從人,其人不納,禮歸子乎.
對曰,歸矣.佛言,今子罵我,我今不納.子自持禍,歸子身矣.猶響應聲,影之隨形.終無免離,愼勿爲
惡.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내가 道을 지켜 크게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일부로 나를 꾸짓고 욕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대꾸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그쳤다. 내가 그에게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禮物을 주려 했을 때 그가 받지 않는다면 그 예물은 당신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가지고 돌아가지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은 스스로가 禍을 가지고 당신 자신에게 돌린 것이다.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고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마침내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디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라고 나는 말했다.
講說: 붓다께서 마가다의 왕사성 밖에 있는 죽림정사에 계실 때, 그 근처에 지체높은 바라문(바라드바자)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한 젊은이가 붓다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었다. 그 바라문은 집안의 수치라 생각하여 붓다를 찾아와 노발대발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경전에는 어떤 종류의 욕설인지 생략되어 있다.)
<이런 때 붓다는 결코 상대하는 일이 없다. 잠자코 들으면서 폭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노여움에 대해서 노여워하지 않음이 진정한 승리임을 알기 때문.>
바라문의 욕소리가 잦아지자 붓다은 이와같이 반문한다. 바라문이여, 당신집에도 친구나 친척 등 방문객이 찾아올 때가 있읍니까? 물론 우리 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요. 그때 당신의 집에서는 손님한테 음식을 내놓는 일이 있습니까? 그건 물을 것도 없소. 바라문이여, 그때 만약 손님이 음식을 들지 않으면 그것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건 할 수 없지요. 우리 집에서 먹을 수밖에요. <붓다의 반문은 여기서 일단 끝난다.>
조용한 목소리로 바라문에게 다시 말을 잇는다. 바라문이여, 방금 당신은 내게 온갖 욕지거리를 퍼부었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그 욕지거리는 당신 것이오. 어서 추심하시오. 만약 내가 당신의 욕설에 맞장구를 치거나 욕설로써 응수했다면, 주인과 객이 같은 음식을 먹은 거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 그건 당신이 먹을 수밖에 없지 않소? 바라문이 반성하는 빛이 보이자 붓다는 게송으로서 말씀하셨다.
성난 사람에게 화내어 대꾸하면 거듭 악이 되는 것을 알아야한다.
성난 사람에게 화로서 갚지 않으면 그는 두개의 승리를 얻는다.
남이 성낸 것을 보고 正念으로 자신을 진정시킨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또 남을 이기게 된다.
이 게송을 듣고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깊이 뉘우쳐 붓다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경전은 맺고 있다.(SN. 7: 2, 雜阿含 42 : 89 卑疑)
<第八章>---害賢自損(착한 사람을 해치는 죄악을 깊이 경계함)
原文: 佛言,惡人害賢者,猶仰天而唾,唾不至天,還從己墮.逆風揚塵,塵不至彼,還분己身.賢不可毁,禍
必滅已.
註釋: 분---모일분, 먼지분.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어진이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일과 같다. 침은 하늘에 머물지 않고 돌아와 자기 얼굴에 떨어진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티끌을 뿌리는 일과 같다. 티끌은 저쪽으로 가지 않고 자기 몸에 되돌아 와 묻을 것이다. 어진 사람은 해칠 수 없는 것이며 禍는 반드시 자신을 멸하고 만다.
<第九章>---立志體道(수행의 바른 길을 밝힌다.)
原文: 佛言,博聞愛道,道必難會.守志奉道,其道甚大.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널리 듣는 것으로써 道를 사랑한다면 道를 반드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도를 깨닫고자 하는 뜻을 굳게 지켜 道를 받들면 그 道를 깨침이 심히 클 것이다.
<第十章>---助施得福(남의 착한 일을 보고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을 밝힌
다.)
原文: 佛言,覩人施道,助之歡喜,得福甚大.沙門問曰,此福盡乎.佛言,譬如一炬之火,數千百人,各以炬
來分取,熟食除冥,此炬如故.福亦如之.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道를 베푸는 것을 보고 그를 도와 함께 기뻐한다면 福을 얻음이 아주 클 것이다.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러면 그 공덕은 다할 때가 있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한 횃불이 수천백인 횃불을 가지고 와서 그 불을 나누어 가지고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횃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 복덕도 이와같다
<第十一章>---擧田較勝(福田의 낫고 못함과 供養의 功德을 밝힌다.)
原文: 佛言,飯惡人百,不如飯一善人.飯善人千,不如飯一持五戒者.飯五戒者萬,不如飯一須陀洹.飯百
萬須陀洹,不如飯一斯陀含.飯千萬斯陀含,不如飯一阿那含.飯一億阿那含,不如飯一阿羅漢.飯十
億阿羅漢,不如飯一벽支佛.飯百億벽支佛,不如飯一三世諸佛.飯千億三世諸佛,不如飯一無念無
住,無修,無證之者.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 백명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五戒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만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만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만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일억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십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無念, 無住, 無修, 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第十二章>---擧難勸修(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들어 닦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有二十難.貧窮布施難.豪貴學道難.棄命必死難.得覩佛經難.生値佛世難.忍色忍欲難.見
好不求難.被辱不瞋難.有勢不臨難.觸事無心難.廣學博究難.除滅我慢難.不輕未學難.心行平等
難.不說是非難.會善知識難.見性學道難.隨化度人難.覩境不動難.善解方便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여 보시하기 어렸다. 돈 많고 지위가 높아 가지고는 道를 배우기 어렸다. 목숨을 버려 꼭 그렇게 죽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佛經를 얻어 보기 어렵고,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 색심과 욕심을 참기 어렵다. 좋은 것을 구하지 않기 어렵다. 욕을 먹고 성내지 않기 어렵다. 권세를 가지고 臨하지(뽐내지) 않기 어렵다. 接하는 일마다 無心하기 어렵다. 널리 배워 두루 연구하기 어렵다. 아만을 버리기 어렵다. 무식한 사람을 깔보지(가볍게) 않기 어렵다. 마음씀씀이를 평등하게 쓰기 어렵다.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다. 自性을 보아 道를 배우기 어렵다. 형편을 따라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을 제도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를 당해 움직이지 않기 어렵다. 어떤 경우를 당해 움직이지 않기 어려우며, 방편응 잘 이해하기 어렵다.
<第十三章>---會道知命(宿命과 至道의 관계를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以何因緣,得知宿命,會其至道.佛言,淨心守志,可會至道.譬如磨鏡,垢去明存.斷欲無
求,當得宿命.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오떤 인연으로 宿命을 알 수 있으며, 지극한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보리심을 발하는 뜻을 굳게 지키면 지극한 道를 알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거울을 닦아 먼지가 없어지면 밝아지는 것과 같이, 욕심을 끊어 구할 것이 없으면 마땅히 숙명을 알 수 있다.
<第十四章>---眞修合道(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何者爲善,何者最大.佛言行道守眞者善,志與道合者大.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善이며 어떤 것이 가장 큰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도를 수행하여 참다움을 지키는 것이 善이요, 깨닫고자 하는 뜻과 道와 契合하는 것이 크다.
<第十五章>---忍智力明(힘이 많은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何者多力,何者最明.佛言,忍辱多力.不懷惡故,兼加安健,忍者無惡,必爲人尊.心垢滅盡,淨無瑕穢,是爲最明,未有天地,逮於今日,十方所有,無有不見,無有不知,無有不聞,得一切智,可謂明矣.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힘센 것이며, 어떤 것이 밝은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인욕이 힘센 것이다. 악한 마음을 품지 않겠되는 까닭에, 편안함과 씩씩함을 겸하게 된다. 또 참는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남의 존경을 받게 된다.
마음의 때가 다 없어져서 깨끗하게 더러움이 없는 것이 가장 밝은 것이다. 아직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방세계의 모든 것을 보지 않음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듣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一切智를 얻은 것이니 가장 밝은 것이다.
講說: 비구는 인욕이라 했다. 인욕이 꺠달음에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몸밖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인식하는 정보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정보룰 모두 저장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져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인간이다. 그러나 정보를 받아들일 때 마치 햇빛이 물표면을 투과할 때 그 빛이 굴절 현상이 일어나듯이 우리들의 정보 체계도 받아들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第十六章>---斷欲見道(愛欲을 버리고 참된 도를 보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懷愛欲,不見道者.譬如澄水,致手攪之,衆人共臨,無有覩其影者.人以愛欲交錯,心中濁
興,故不見道.汝等沙門,當捨愛欲.愛欲垢盡,道可見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애욕을 품어 道를 보지 못하는 것은 비유를 들자면 맑은 물을 손으로 휘저어 놓으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임하여도 그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애욕으로써 뒤섞어 엇갈리면 마음 가운데 탁함이 일어나기 때문에 道를 보지 못한다. 너희들 沙門은 마땅히 애욕을 버려야 된다. 애욕의 더러움을 버리면 도를 볼 수 있다.
<第十七章>---滅暗存明(無明은 自性이 없어서 道를 보면 곧 없어짐을 밝힌다.)
原文: 佛言,夫見道者,譬如持炬,入冥室中,其冥卽滅,而明獨存.學道見諦,無明卽滅,而明常存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본다는 것은 비유를 들자면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면 그 어두움이 곧 사라지고 밝음이 홀로 있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서 진리를 보면 無明은 곧 사라지고 밝음만이 항상 있을 것이다.
講說: 진리를 본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음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因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覺者나 迷者나 모두 因果 法則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迷者는 因果의 사슬에 매여 苦를 받으나 覺者는 因果의 法則을 잘 알아서 그 因果의 法則을 衆生 救濟의 그물로 삼는다. 즉 覺者는 항상 깨어있기 때문에 苦란 없다.
<第十八章>---無相會眞(佛法은 생각(念)과 행동(行)과 말(言)과 닦음(修)이, 모두 있음과 없음을
초월했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吾法念無念念,行無行行,言無言言,修無修修.會者近爾,迷者遠乎.言語道斷,非物所拘.差
之毫釐,失之須臾.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내 法은 無念의 念을 念하고, 無行의 行을 行하고, 無言의 言을 말하며, 無修의 修를 닦는다. 깨달은 者는 가깝고, 미혹한 者는 멀 뿐이다.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物에 끄달리는 바가 없다.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잃는 것은 순간이다.
講說: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 는 것은 모든 존재 자체가 원래 언어명상을 떠나 있다. 때문에 존재의 관찰도 관찰의 내용에 있어서 무언가 티끌만한 전제가 되는 意味가 끼여 있다면 이것은 반칙이다. 존재의 참모습은 커녕 왜곡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천지현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無念之念, 無行之行, 無言之言, 無修之修는 念, 行, 言, 修라는 相을 거부하는 철저하게 이것마져 집착하지 않는, 끼여들여 놓지 않는, 전제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 체험함을 말한다. 마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하는 도리와 같다. 즉 無念之念, 無行之行, 無言之言, 無修之修는 직접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속에서의 체험의 사실을 말한다.
<第十九章>---觀中得道(오직 心識으로 자세히 관찰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을 가질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天地를 觀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세계를 관찰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며, 신영스러운 깨어있는 마음을 관찰하면 곧 깨어있음이 된다. 이와같이 알면 도를 얻음이 빠를 것이다.
<第二十章>---身本無我( 나 가 없음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땅히 몸 가운데 四大가 각기 스스로 이름은 있으나 도무지 나가 없다. 라고 알아차려야 된다. 나가 이미 전혀 없다면 그것은 幻과 같을 뿐이다.
註釋: 알아차림----當念身中四大의 念.
<第二一章>---好名無益(명예는 구할것이 못 된다는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정욕을 따라 名譽을 구한다. 명예가 드러날만 하면 몸은 이미 죽고 만다. 세상의 명예를 탐하면서 道를 배우지 아니하고 헛되이 힘만 들이고 몸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다. 비유을 들자면 마치 향을 사루어서 비록 사람들이 향내를 맡으나 향은 이미 재가 됨과 같다. 이와같이 몸을 태우는 불이 그 뒤에 있는 것이다.
<第二二章>---財色招苦(財物과 色의 害가 큼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에 있어서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칼 끝에 꿀이 묻은 있는 것과 같다. 한 번 빨아 먹는 맛에도 모자라는데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핥을 때는 곧 혀를 베일 근심이 있는 것이다.
<第二三章>---妻子甚獄(처자나 지옥의 번뇌를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처자나 집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심하다. 감옥은 사람을 석방할 기한은 있으나 처자는 멀리 떠날 생각조차 없다. 情愛은 色에 있어서 어찌 치달림을 두려워 하겠는가. 비록 호랑이 아가리의 근심이 있더라도 마음을 愛情에 두어 즐겁게 엎드려서 몸을 진흙에 스스로 던져 빠져든다. 그러므로 범부라고 하고, 그 문을 뚤고 나오면 티끌 번뇌를 벗어나 아라한이라고 한다.
<第二四章>---戀色障道(색욕이 중생의 가장 큰 병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은 색보다 심한 것이 없다. 색의 욕망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 다행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이 능히 道를 닦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第二五章>---欲火燒身(애욕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잡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이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된다.
<第二六章>---降魔化他(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天神이 玉女를 부처님에게 바처서 부처님의 뜻을 꺾으려고 할 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죽 주머니에 온갖 더러움을 가진 이여 너는 무엇할려고 왔는가. 물러가라 나에게는 필요 없다. 천신은 더욱 공경하게 道의 뜻을 물었다.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解說하여 주었더니 수타원果를 얻었다.
<第二七章>---逆情順性(道를 닦기 위해서 먼저 모든 장애를 떠나야 함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 사람은 마치 나무가 물에 있어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양쪽 기슭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이 가지고 가지 않고, 귀신에게 막히는 바가 되지 않고, 소용돌이에 빠지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는다면, 나는 이 나무가 결정코 바다에 들어가리라고 보장할 것이다. 道를 배우는 사람도 정욕에 미혹되지 않고, 온갖 삿된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無爲에 精進하는 이는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道를 얻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第二八章>---意馬莫縱(凡夫의 믿지 못할 것과 色의 禍를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너의 뜻을 믿지 말라. 너의 뜻은 믿을 수 없다. 삼가 색과 만나지 말라. 色과 만나면 화를 초래할 것이다. 아라한과를 얻어야만이 너의 뜻을 믿을 수 있다.
<第二九章>---正念觀女(여색을 멀리하여 허물을 막고 착함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여색을 보지 말라. 또한 함께 말하지 말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되면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되, 나는 사문이 되어서 탁한 세상에 처하여 있으나, 마땅히 연꽃처럼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라. 나이 많은 여인는 어머니 같이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여인은 누님 같이 생각하며, 나이가 적은 이는 누이 동생으로 생각하며, 어린이는 딸처럼 생각하여 제도할 마음을 내면 악한 생각은 사라진다.
<第三十章>---欲火遠離(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해를 입지 말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마른 풀을 입은 것같이 하여 불이 오면 모름직이 피해야 하는 것이다. 道 닦는 사람은 欲心를 보거든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第三一章>---心寂欲除(욕심을 끊으려면 먼저 마음을 끊을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음욕이 그치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자기의 생식기를 끊고자 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일렀다. 그 생식기를 끊는 것은 그 마음을 끊는 것만 못하다. 마음은 마치 공조와 같아서 공조를 만일 그치면 그를 따르는 사람도 모두 쉬지만 삿된 마음을 그치지 않으면 생식기를 끊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부처님은 偈를 설하셨다. 욕심은 너의 뜻에서 생기고 뜻은 사와 상애서 생기니, 두 마음이 고요해지면 모든 색은 色이 아니요, 모든 行은 행이 아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이偈頌은 가섭불의 말씀이다. 라고 하셨다.
<第三二章>---離愛忘憂(걱정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김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애욕을 좇아 근신이 생기고, 근심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만일 사랑을 떠나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가.
<第三三章>---精進破魔(道를 닦는 사람은 戒.定.慧를 갖출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 닦는 사람은 비유를 들자면 한 사람이 만 사람과 더불어 싸워서 갑옷을 입고 문을 나서자 마음이 혹 겁약하며, 혹 반쯤 가서 물러나기도 하며, 혹은 맞붙어 싸우다가 죽기도 하며, 혹은 이기고 돌아올 경우도 있다. 사문이 道를 배울 때는 마땅히 그 마음을 굳게 가져서 용감하게 나아가며, 앞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악마를 파멸하고 道果를 얻을 것이다.
<第三四章>---適中證理(도를 배우되 中道를 따라야 할 것을 밝힌다.)
解釋: 沙門이 밤에 가섭불의 遺敎經 을 독송하는데 그 소리가 쓸프고 긴장하여 후회하면서 (세속으로) 물러나고자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그에게 묻기를 너는 옛날에 在家에 있을 때, 일찍이 무엇을 業으로 하고 있었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처님은 마씀하시기를 줄을 늦추면 어떻던가?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줄을 아주 급하게 조이면 어떻던가? 소리가 끊어집니다. 줄의 늦춤과 조임이 알맞으면 어떻던가? 모든 소리가 두루 고릅니다. 사문이 道를 배우는 것도 또한 그와같다. 마음이 만약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道에 대하여 만약 너무 급하게 마음을 쓰면 몸이 피로하고 그 몸이 피로 하면 마음이 곧 괴로울 것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수행이 곧 뒷걸음을 칠 것이고 그 수행이 이미 뒷걸음을 친다면 罪는 반드시 더해 갈 것이다. 단지 마음과 몸이 깨끗하고 편안해야만이 道를 잃지 않을 것이다.
<第三五章>---去染卽淨(더러움(번뇌)을 버려야 할 것을 깨우친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치 사람이 쇠를 단련할 때에 찌끼를 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그릇이 정밀하고 좋게되듯이, 道를 배우는 사람도 마음의 더러움을 재거하면 행실이 청정해 질 것이다.
<第三六章>---擧難再勸(아홉 가지의 어려운 일을 밝혀 사람을 깨우친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惡道를 떠나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이미 사람이 되었어도 여자를 버리고 남자되기 어려우며, 이미 남자가 되었으나 六根을 완전히 갖추기가 어렵고, 육근을 갖추었어도 중국에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이미 중국에 태어났어도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려우며, 이미 부처님의 세상을 만났어도 道人을 만나기 어려우며, 이미 도인을 만났어도 신심을 일어키기 어려우며, 이미 신심을 일어켰었나 보리심을 발하기 어렵고, 이미 보리심을 발하였어도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음을 알기(통달하기) 어렵다.
<第三七章>---持戒得果(계율의 중함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佛子가 내게서 數 千里를 떠나 있더라도 나의 戒律을 항상 기억하면 반드시 道果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左右에 있어서 비록 항상 나를 보더라도 나의 계를 따르지 않는 다면 마침내 道를 얻지 못할 것이다.
<第三八章>---無常迅速(사람의 목숨은 떳떳함이 없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이 사문에게 묻기를 사람의 人命은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슴은 얼마 동안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人命은 얼마 동안에 있는냐?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착하다. 자네는 도를 안다. 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講說: <無常>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파타챠라尼는 持律第一 이라고 한다. 그녀는 출가 이전에는 비참하고 고난에 찬 생활을 보냈다. 테리가타(長老尼偈) 주석서에 적힌 그녀의 출가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출가하여 파타챠라라고 불린 그녀는 부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수행에 힘썼다.
어느날 그녀는 병에 물을 받아 가지고 와서 발을 씻은 다음 물을 버렸다. 맨 처음 버린 물은 조금 흐르다가 그쳐 버렸다. 두번째로 버린 물은 좀더 저만큼 흐르다가 그쳐버렸다. 세번째로 버린 물은 좀더 저만큼까지 흐르다가 역시 그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맨 처음에 버린 물처럼 短命하여 요절하는 사람도 있고, 두번째의 물처럼 중년에 가서 죽는
사람도 있다. 또한 세번째의 물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람도 있지마는, 결국에는 누구나 다 죽
어 갈 수밖엔 없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부처님의 말씀이 귓가에 들려 왔다.
바로 그대로니라. 파타챠라야, 생명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죽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몸이나
마음이나 사물이나, 모두 다 생겨났다가는 사라져 간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백년동안을
사느니보다는, 이 같은 이치를 깨닫고 단 하루, 아니 한 찰라만이라도 사는 것이 더 나으니
라.
이 말씀을 들은 순간에 파타챠라는 성자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 때의 부처님의 말씀은 <법구경113(若人壽百壽,不知成敗事,不如生一日,見微知所忌. 비록 사람이 백 살을 살아도 일의 成敗를 알지 못하면, 단 하루를 살아도 기미를 보아 꺼릴 바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에 기록되어 있다. 테리가타(長老尼偈) 은 이러한 禪體驗 過程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읊고 있다.
저는 두 발을 씻고,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발 씻은 물이 높은 곳
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가는 것을 보고, 저는 혈통이 좋은 駿馬를 길들이듯 마음을 가
라앉혔습니다. <제114편>
그리고 나서 등불을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누울 자리를 바라다 보고서 침
상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제115편>
이윽고 어둠을 밝히고 저는 바늘을 잡고 등심지를 낮추었습니다. 그러자 불꽃이 스러지듯
마음은 해탈했습니다. <제116편>
<呼吸>은 바라문교에 있어서 不變의 아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원의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관념일 뿐이다. 비파사나 禪修行에 호흡 관찰이 있다. 결국 호흡에 不滅의 自我,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밝혀진다. 오로지 호흡은 無常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 생명의 영원성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人命은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한 것이다. 모두 선수행의 체험에의한 결과이다.
<第三九章>---依敎無差(모든 경전은 마땅히 믿어 좇아야 할 것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불도를 배우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모두 마땅히 믿고 따라야 한다. 비유를 들자면 꿀을 먹으면 한 가운데나 가가 모두 단 것과 같이, 내가 설한 경전도 또한 이와같다.
<第四十章>---修行在心(도를 행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
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沙門이 道를 行할 때, 마치 磨牛와 같이 하지 말라. 몸은 비록 道를 行하나 마음은 道를 行하지 않는 것이니, 마음의 道만을 行할 것 같으면, 무슨 道를 行할 것이 있겠는가?
註釋: 磨牛는 磨坊之牛이다. 磨坊이란 製粉所를 말한다. 말하자면 맷돌을 돌리기 위해 소를 이용하여 방아을 찢는데, 소를 이용한다. 이때 소는 맷돌에 매여서 빙빙 돌면서 맷돌을 간다. 사람은 뒤에서 채칙을 가지고 소를 독촉한다. 이때의 소는 自由를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되로 되지 않는다. 몸은 주인이 하자는 데로 하지만 자기의 의사와 상관이 없다. 때문에 수행자도 이 소와 같이 몸은 방아를 찟듯이 도를 행하나 소의 자기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듯이 수행자도 도를 행하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한다.
<第四一章>---直心出塵(곧은 마음으로 항상 도를 생각할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 사람은 마치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깊은 짆흙 속을 지나가듯이 피로가 극에 달하여 감히 좌우를 돌아볼 사이도 없다가 진흙길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는 것과 같이, 沙門도 마땅히 情欲이 진흙보다 甚하다는 것을 관찰하라. 그리고 곧은 마음으로 항상 道를 잊지 말고 알아차려야만이 人生苦를 벗어날 수 있다.
<第四二章>--- 一切如幻(부처님의 눈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왕후의 지위를 문틈으로 지나가는 먼지와 같이 보고, 금옥의 보배를 마치 기와와 조약돌과 같이 보며, 희고 고운 명주옷을 빛 바랜 해진 비단옷 같이 보며, 大千世界를 마치 겨자씨 처럼 작은 알같이 보며, 阿욕池의 물을 마치 발에 바르는 기름과 같이 보며, 方便門을 마치 幻化의 금은보화 보물무더기처럼 보며, 無上乘을 마치 꿈속의 금이나 비단같이 보며, 佛道를 마치 눈앞의 꽃과 같이 보며, 禪定을 마치 수미산의 기둥과 같이 보며, 涅槃을 마치 아침 저녁으로 깨어 있는 것과 같이 보며, 倒正을 마치 六龍이 춤추는 것과 같이 보며, 平等을 마치 一眞地와 같이 보며, 敎化를 일으킴을 마치 四時의 나무처럼 보는 것이다.
註釋: 訶子는 범어 haritaki의 음역이다. 訶梨勒, 訶利勒이라고도 쓰고, 天主持,天主將來라고 飜譯한다. 印度에서 생기는 喬木의 果樹로, 그 果實은 藥用으로 쓰인다.
(불교학대사전 p.p.5--6, 홍법원)
第四十二章----------< 있는 그대로 보라(如實知見) 의 三佛眼>
1 名位------------
2 財富------------ 言語의 世界에는 名譽나 地位나 財産, 衣食
등이 존재하나 實相의 世界에는 존재하지 않
註釋: 1, 空觀(世間法)五----- 는다. 말하자면 언어는 實在가 아니다. 그러
<본래 存在하지 않는 것을 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언어가 指示
있다 라고 錯覺하여 執着 하는 그것이 존재하는 것같이 여긴다. 실재
한다. 遍計所執自性이다. 에 있어서는 錯覺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작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作 품일 뿐이다. 事實의 세계는 相對的이다. 때
品이다. 故로 一切唯心所 문에 실체성이 없다. 비여 있다. 즉 空이다.
造이다.> 언어의 세계는 有와 無의 세계이다. 有無의
세계는 觀念의 세계이다.
3- 衣食---------
4 世界------------
大小多少는 妄想이다. 즉 大小多少는 唯心
所造이다.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가는
5 河海------------ 道理이다. 旗도 바람도 아닌 마음이 흔들일
뿐이다.
6 方便--------------佛眼觀之,不過對機說法,爲實施權.直與幻人變
化種種珍寶,掩人耳目無異.故曰視方便門,如化
寶聚也.
7 大乘--------------無上乘,能至寶所,非復方便門之僅止化城可比.
是實至高無上止果法矣.然佛眼觀之,不過究竟圓
滿,顯其所隱.所謂圓滿菩提,歸無所得.亦如夢
中,得有金帛,意出望外.태至覺來,全屬固有,別
無所得.故曰視無上乘,如夢金帛也.
*태:미칠태(이름)
2, 假觀(出世間法)五-8- 佛道--------------佛眼觀之,則佛道雖高,不過爲衆生解粘去縛,返
<無明(不覺)에 의하여 始覺 妄歸眞而已.- - - 若轉凡情,卽無聖道.- - -譬
이 생기고 始覺에 의하여 如空中,花花絮絮燦爛奪目.實皆根塵交偶而後現
本覺에 돌아간다. 이때의 前.若脫根塵,花亦寂滅.故曰視佛道,如眼前華
始覺이란 方便과 無上乘과 也.
佛道와 禪定과 涅槃이 필요
하다. 그러나 始覺이 本覺 9 禪定--------------佛眼觀之,禪定雖妙,不過諸心心所之相,見,自
으로 되돌아 오면 始覺이 證,證自證,四分合成.譬如須彌出海,狂風駭浪,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상 걸然不動.亦唯四寶四微合成而已,豈眞別有實法
대적이다. 그러므로 깨달 哉.故曰視禪定,如須彌柱也.
음을 얻으려면 時節因緣을
보라 라고 한 것이다.> 10 涅槃--------------佛眼觀之,則涅槃雖勝,亦對生死而言.惟生死爲
無明所纏,則長夜漫漫,晝夕咸寐.涅槃乃智慧已
開,則永日朗朗,晝夕咸寤.亦非生死之外,別有涅
槃實法.故曰視涅槃,如晝夕寤也.
11 倒正----圓中諦---背覺合塵名爲倒,而實無減.背塵合覺名爲正,
而實無增.故但如六龍舞,不過首尾相換而已.
一切諸法,皆屬相對.覺之卽正而不增,不覺卽
倒而不減.故如六龍之舞,但換首尾而無實法
也.
3, 中觀(世出世間法)三 12-- 平等----大眞諦---諸法旣皆平等.則隨擧一微塵法,卽與一眞如
<깨닫고 보면 시작과 끝이 地平等.非離一切法外,別有一大總相法門.直
없음을 알게된다. 본래 是頭頭法法,無非大總相法門也.
그대로의 세계일 뿐이다. 色心不二,因果不二,修性不二,染淨不二,- - -
正과 倒가 본래 실체가 없 一切皆屬止觀之妙境,相入相卽,無非中道實
고, 일대 대평등이다. 깨쳐 相.故如一眞法界之理地,同一不受纖塵,而別
서 눈이 열린 사람은 중생 無實法也.
교화를 하더라도 구제된 중
생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13 興化----大俗諦---依一眞地而施化道.如依大地而有四時之木.
중새제도는 인연에 따라 春生夏榮,秋實冬落.番番生.番番榮.番番實.
유희할 뿐이다. 그것도 끝 番番落.終而復始.始而復終.遍於十方.亘於
없이 왜냐하면 法이 無始 三世.皆是如來自在神力也.
無終이기 때문이다. 視興化如四時木者,興化謂佛之本懷,志在普
참으로 눈뜬 사람만이 行할 利群倫,不以自利爲限.由前二觀,降魔成道,
수 있다.> 已得自受用三昧.而今復以已所證悟之法,轉
以化他,令皆受用.
- - - 사십이장경 과표 - - -
<<序分>>
<<正宗分>>
<第一章>---出家證果(修行僧이 세속을 떠나 수행함으로써 얻는, --- 위 없는 깨달음
깨달음의 네가지를 밝힌다.)
<第二章>---達理崇道(出家 修行者의 깨달음에는 네 가지 차별이 ---출가의 목적
있으나 그 참된 이치에는 차별이 없음을
밝힌다.) -- 걸림없는 해탈
<第三章>---割愛知足(愛欲을 끊어 道를 이루는 방법을 밝힌다.)
<第四章>---止惡行善(사람의 착함과 악함이 오직 그의 業에 있음
을 밝힌다.)
<第五章>---悔過滅罪(허물을 고쳐 착한 길로 나아가기를 권한다.) -- 善은 열반에
<第六章>---忍惡無瞋(善은 능히 惡을 이기고 惡은 善을 부수지 나아가는 지름
못함을 밝힌다.) 길
<第七章>---謗佛招禍(위의 第六章의 견디어 참는 본보기를 밝힌
다.)
<第八章>---害賢自損(착한 사람을 해치는 죄악을 깊이 경계함)
<第九章>---立志體道(수행의 바른 길을 밝힌다.)
<第十章>---助施得福(남의 착한 일을 보고 마치 자기가 한 일 발심수행 방법
처럼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을 밝힌다.) --으로써의 회광
<第十一章>---擧田較勝(福田의 낫고 못함과 供養의 功德을 반조와 보시회향
밝힌다.)
<第十二章>---擧難勸修(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無知에 의한 스
들어 수행하기를 권한다.) 무 가지 장애
<第十三章>---會道知命(宿命과 至道의 관계를 밝힌다.) 모든 것중에
<第十四章>---眞修合道(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道와 契合하는
<第十五章>---忍智力明(힘이 많은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것이 가장 크고
밝힌다.) 깨달음이 가장
밝다.
<第十六章>---斷欲見道(愛欲을 버리고 참된 도를 보기를
권한다.)
<第十七章>---滅暗存明(無明은 自性이 없어서 道를 보면 곧
없어짐을 밝힌다.) --알아차림(깨여
<第十八章>---無相會眞(佛法은 생각(念)과 행동(行)과 말(言)과 있음, 觀 또는
닦음(修)이, 모두 있음과 없음을 초월했음 看)이 道를 얻
을 밝힌다.) 게 한다.
<第十九章>---觀中得道(오직 心識으로 자세히 관찰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을 가질 것을 밝힌다.)
<第二十章>---身本無我( 나 가 없음을 밝힌다.) ---출가 생활
<第二一章>---好名無益(명예는 구할것이 못 된다는 것을 밝힌다.)
<第二二章>---財色招苦(財物과 色의 害가 큼을 밝힌다.)
<第二三章>---妻子甚獄(처자나 지옥의 번뇌를 밝힌다.) -- 깨여있음을
<第二四章>---戀色障道(색욕이 중생의 가장 큰 병임을 밝힌다.) 흐리게 하는
<第二五章>---欲火燒身(애욕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밝힌다.) 渴愛(칼날에
<第二六章>---降魔化他(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묻은 꿀)
<第二七章>---逆情順性(道를 닦기 위해서 먼저 모든 장애를 떠나야
함을 밝힌다.)
<第二八章>---意馬莫縱(凡夫의 믿지 못할 것과 色의 禍를 밝힌다.)
<第二九章>---正念觀女(여색을 멀리하여 허물을 막고 착함으로 나아
가는 방법을 밝힌다.) --바른 견해를
<第三十章>---欲火遠離(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해를 입지 말 것을 세워야 한다.
밝힌다.)
<第三一章>---心寂欲除(욕심을 끊으려면 먼저 마음을 끊을 것을
밝힌다.)
<第三二章>---離愛忘憂(걱정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김을
밝힌다.
<第三三章>---精進破魔(道를 닦는 사람은 몸으로 보시와 지계, 마음
으로는 인욕, 선정, 지혜를 끊임없이
행한다.)
<第三四章>---適中證理(도를 배우되 中道를 따라야 할 것을 밝힌
다.)
<第三五章>---去染卽淨(더러움(번뇌)을 버려야 할 것을 깨우친다.)
<第三六章>---擧難再勸(아홉 가지의 어려운 일을 밝혀 사람을 깨우
친다.) --정진과 그 방법
<第三七章>---持戒得果(계율의 중함을 밝힌다.)
<第三八章>---無常迅速(사람의 목숨은 떳떳함이 없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힌다.)
<第三九章>---依敎無差(모든 경전은 마땅히 믿어 좇아야 할 것임을
밝힌다.)
<第四十章>---修行在心(도를 행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
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第四一章>---直心出塵(곧은 마음으로 항상 도를 생각할 것을
밝힌다.) --있는 그대로
<第四二章>-- 一切如幻(부처님의 눈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보라
것을 밝힌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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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송광사 지운스님
<<序分>>
原文: 世尊成道已.作是思惟.離欲寂靜,是最爲勝.住大禪定,降諸魔道.於鹿野苑中,轉四諦法輪.度교진
여等五人而證道果.復有比丘所說諸疑,求佛進止.世尊敎勅,一一開悟.合掌敬諾,而順尊勅.
註釋: 四聖諦---중아함 상적유경에는 모든 짐승의 발작욱은 코끼리 발작욱에 모두 포함되듯이 붓
다의 모든 가르침은 이 사성제에 다 포함된다.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이것은 苦다. 이것
은 苦의 해결이다 라는 것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사성제의 가르침는 바로 이것은
苦다. 이것은 苦의 해결이다 라는 것이다.
進止---1)나아감과 머무름. 움직임과 움직이지 아니함. 2)기거 동작. 행동. 3)指揮.
4)卽取捨之義.謂進取正道,而捨棄諸邪也.
敎勅---가르치고 신칙함. *勅: 신칙할칙(타이름. 경계함.)
敬諾---삼가 승낙함. (諾: 대답할낙(예하고 대답함. 천천히 대답함. 공손하지 않은 대
답.). 승낙할낙(승인함).
解釋: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치시고 난뒤, 이렇게 思惟를 하시었다. 욕망을 떠난 寂靜은 가장
수승 하다. 라고하시고. 대선정에 머물러 모든 악마의 道를 항복 받으신 다음, 녹야원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바뀌를 굴려, 교진여등 다섯 수행자를 제도하여 깨닫게하였다.
다시 비구들이 있어 말하는 바의 모든 의심에 대하여 부처님에게 나아감과 머무름을 求하
므로,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경계하게하여 하나 하나 깨닫게하시니, 그들은 합장 공경하고
삼가 승낙하여 世尊의 가르침을 따랐다.
<<正宗分>>
<第一章>---出家證果(修行僧이 세속을 떠나 수행함으로써 얻는, 깨달음의 네가지를 밝힌다.)
原文: 佛言,辭親出家,識心達本,解無爲法,名曰沙門.常行二百五十戒,進止淸淨,爲四眞道行,成阿羅
漢.阿羅漢者,能飛行變化,曠劫壽命,住動天地,次爲阿那含,阿那含者,壽終靈神上十九天,證阿羅
漢.次爲斯陀含,斯陀含者,一上一還,卽得阿羅漢.次爲須陀洹,須陀洹者,七死七生,便證阿羅漢.
愛欲斷者,如四肢斷,不復用之.
註釋: 1)識心者了知心外無法,卽悟遍計本空. 2)了知境空心有,心外無法,一切皆係遍計執性,謂之識
心.
1)達本者了知心性無實,卽悟依他如幻. 2)了達境由心生,心亦如幻,一切皆係依他起性,謂之達
本.
1)解無爲法者了知眞如與一切法不一不異,卽證圓成實性. 2)解悟眞如與諸法,非空非有,不一不
異,一切皆係圓成實性,謂之解無爲法.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출가한 사문은 마음 밖에 다른 존재가 없음을
알고 존재의 본질을 통달하여 무위법을 깨달아야 사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비구 二百五
十戒를 행하여, 삿된 행위을 버리고 바른 길에 나아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네가지 성
서로운 가르침을 수행하여 아라한을 이루는 것이다.
아라한은 능히 날아다니고 변화를 자유자재하며, 한량 없는 수명을 가지며, 그가 住하는
곳에는 천지가 진동한다. 다음은 아나함이 되는 것이다. 아나함이란 목숨이 다하면 그 신령
스러운 마음은 十九天으로 올라가서 阿羅漢果을 증득하는 것이다. 다음은 斯陀含이 되는 것
이다. 斯陀含은 한번 欲界의 六天에 오르고, 한번 인간계에 돌아와서 곧 아라한이 된다. 다
음은 須陀洹이 되는 것이다. 須陀洹은 일곱번 죽었다가 일곱번 인간계에 태어나서 곧 阿羅
漢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愛欲을 끊은 사람은 마치 사지를 끊어 다시는 쓰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第二章>---達理崇道(出家 修行者의 깨달음에는 네 가지 차별이 있으나 그 참된 이치에는 차별이
없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出家沙門者,斷欲去愛,識自心源,達佛深理,悟無爲法.內無所得,外無所求.心不繫道,亦不
結業.無念無作,非修非證.不歷諸位,而自崇最,名之爲道.
解釋: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부모 형제와 이별하고 출가한 사문은 욕망을 끊고 愛欲을 버려 자
기 마음의 근원을 알고, 佛道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무위법을 깨달아야 한다.
안으로 얻을 것이 없고, 밖으로 구할 것이 없다. 마음은 道(眞理)에도 얽매이지 않고,
業도 짓지 않는다.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닦을 것도 없고 證得할 것도 없다. 여러 과
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은 것이니 이것을 道라고 한다.
講說: 깨달음을 얻고 보면 중생과 부처와 마음이 차별이 없음을 안다. 모든 존재 그대로가 부처의 모습이요 부처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무명이 있음을 현실의 苦에서 출발하여 찾아낸다. 그러나 존재의 참모습을 깨치고 보면, 무명이 본래 없음을 알아차려 진다. 때문에 안밖이나 진리나 업이나 생각이나 지음이나 닦는 것이나 증득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 따위의 모든 것이 없어진다.이러한 어떠 과정을 거쳐서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원래 무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모든 존재의 참모습이 나타나므로 해서 존재를 왜곡하여 보는 無明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치는 이렇게 명백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깨닫지 못한 중생의 입장은 괴로움이 치열함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단계가 있고 깨달음의 성취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이 苦의 해결, 즉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까? 말하자면 방법은?
<第三章>---割愛知足(愛欲을 끊어 道를 이루는 방법을 밝힌다.)
原文: 佛言,剃除鬚髮而爲沙門,受道法者,去世資財.乞求取足,日中一食,樹下一宿,愼勿再矣.使人愚蔽
者,愛與欲也.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내 가르침을 배워 익히는 자는 세속의 온갖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빌어 얻는 것으로써 만족하라. 하루 한 끼만 먹고 나무 밑에서 한 밤을 지나되, 삼가 재차 머물지 말라. 사람의 마음을 덮어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애착과 탐욕이다.
<第四章>---止惡行善(사람의 착함과 악함이 오직 그의 業에 있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衆生以十事爲善.亦以十事爲惡.何等爲十.身三,口四,意三.身三者,殺盜음.口四者,兩舌,
惡口,妄言,기語.意三者,嫉,애,癡.如是十事,不順聖道,名十惡行.是惡若止,名十善行耳.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 가지 일로써 善이 되기도 하고, 열가지 일로써 악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열가지 일인가? 몸의 세 가지, 말의 네 가지, 생각의 세 가지이다.
몸의 세 가지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과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과 음란한 짓을 하는 일이다. 말의 네 가지란, 이간질과 악담과 거짓말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꾸미는 일이다. 생각의 세 가지란, 탐욕과 성냄과 이치에 어두워 깨어있지 못한(알아차림이 없는) 어리석음이다.
이와같은 열 가지 일은 성스런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지 않으니, 열 가지 악한 행위라고 한다. 이러한 악한 일을 하지않고 열반을 성취하는 길을 따르면 열 가지 착한 일이 될 것이다.
講說: 善行은 戒律에 근거한다. 계율로서 善惡을 가려낸다. 이는 禪修行의 첫段階이다.
<第五章>---悔過滅罪(허물을 고쳐 착한 길로 나아가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有衆過,而不自悔,頓息其心.罪來赴身,如水歸海,漸成深廣.若人有過,自解知非,改惡行
善,罪自消滅.如病得汗,漸有전損耳.
註釋: 전---나을전, 고칠전. 頓息---止息也. 止息---머물러 쉼.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허물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허물을 그 마음에 머물게 하면 죄가 몸에 달려오기가 마치 냇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고 넓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허물이 있어 스스로 그릇된 허물을 잘 알아서 악한 것을 고쳐 착한 것을 행하면 죄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마치 병자가 땀을 내고 점차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講說: 善行은 人生苦의 病을 고치는 藥이다. 그러나 善行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존재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前提 條件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허물이 있음을 아는 것은 바로 계율로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속 윤리로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음에 나아가는 일에는 계율이 그 檢證의 근거가 되지 않으면 않된다.
계율이란 본래 우리 마음의 청정한 모습의 작용이다. 말하자면 自性淸淨心의 淨化力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第六章>---忍惡無瞋(善은 능히 惡을 이기고 惡은 善을 부수지 못함을 밝힌다.)
原文: 佛言,人聞善,故來擾亂者,汝自禁息,當無瞋責.彼來惡者,而自惡之.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惡한 사람이 善한 사람의 말을 듣고, 일부로 찾아와서 귀찮게 굴더라도, 너가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마음을 쉬어 그에게 성내거나 꾸짖지 말라. 그가 와서 미워하는 것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다.
<第七章>---謗佛招禍(위의 第六章의 견디어 참는 본보기를 밝힌다.)
原文: 佛言,有人聞吾守道,行大仁慈,故致罵佛.佛黙不對,罵止.問曰,子以禮從人,其人不納,禮歸子乎.
對曰,歸矣.佛言,今子罵我,我今不納.子自持禍,歸子身矣.猶響應聲,影之隨形.終無免離,愼勿爲
惡.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내가 道을 지켜 크게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찾아와 일부로 나를 꾸짓고 욕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대꾸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그쳤다. 내가 그에게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禮物을 주려 했을 때 그가 받지 않는다면 그 예물은 당신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가지고 돌아가지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은 스스로가 禍을 가지고 당신 자신에게 돌린 것이다.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하고 그림자가 물체를 따르는 것과 같이, 마침내 당신은 당신이 범한 죄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오. 그러니 부디 악한 일을 하지 마시오. 라고 나는 말했다.
講說: 붓다께서 마가다의 왕사성 밖에 있는 죽림정사에 계실 때, 그 근처에 지체높은 바라문(바라드바자)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한 젊은이가 붓다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었다. 그 바라문은 집안의 수치라 생각하여 붓다를 찾아와 노발대발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경전에는 어떤 종류의 욕설인지 생략되어 있다.)
<이런 때 붓다는 결코 상대하는 일이 없다. 잠자코 들으면서 폭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노여움에 대해서 노여워하지 않음이 진정한 승리임을 알기 때문.>
바라문의 욕소리가 잦아지자 붓다은 이와같이 반문한다. 바라문이여, 당신집에도 친구나 친척 등 방문객이 찾아올 때가 있읍니까? 물론 우리 집에도 손님이 찾아오지요. 그때 당신의 집에서는 손님한테 음식을 내놓는 일이 있습니까? 그건 물을 것도 없소. 바라문이여, 그때 만약 손님이 음식을 들지 않으면 그것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건 할 수 없지요. 우리 집에서 먹을 수밖에요. <붓다의 반문은 여기서 일단 끝난다.>
조용한 목소리로 바라문에게 다시 말을 잇는다. 바라문이여, 방금 당신은 내게 온갖 욕지거리를 퍼부었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그 욕지거리는 당신 것이오. 어서 추심하시오. 만약 내가 당신의 욕설에 맞장구를 치거나 욕설로써 응수했다면, 주인과 객이 같은 음식을 먹은 거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 그건 당신이 먹을 수밖에 없지 않소? 바라문이 반성하는 빛이 보이자 붓다는 게송으로서 말씀하셨다.
성난 사람에게 화내어 대꾸하면 거듭 악이 되는 것을 알아야한다.
성난 사람에게 화로서 갚지 않으면 그는 두개의 승리를 얻는다.
남이 성낸 것을 보고 正念으로 자신을 진정시킨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또 남을 이기게 된다.
이 게송을 듣고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깊이 뉘우쳐 붓다께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고 경전은 맺고 있다.(SN. 7: 2, 雜阿含 42 : 89 卑疑)
<第八章>---害賢自損(착한 사람을 해치는 죄악을 깊이 경계함)
原文: 佛言,惡人害賢者,猶仰天而唾,唾不至天,還從己墮.逆風揚塵,塵不至彼,還분己身.賢不可毁,禍
必滅已.
註釋: 분---모일분, 먼지분.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어진이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 일과 같다. 침은 하늘에 머물지 않고 돌아와 자기 얼굴에 떨어진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티끌을 뿌리는 일과 같다. 티끌은 저쪽으로 가지 않고 자기 몸에 되돌아 와 묻을 것이다. 어진 사람은 해칠 수 없는 것이며 禍는 반드시 자신을 멸하고 만다.
<第九章>---立志體道(수행의 바른 길을 밝힌다.)
原文: 佛言,博聞愛道,道必難會.守志奉道,其道甚大.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널리 듣는 것으로써 道를 사랑한다면 道를 반드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도를 깨닫고자 하는 뜻을 굳게 지켜 道를 받들면 그 道를 깨침이 심히 클 것이다.
<第十章>---助施得福(남의 착한 일을 보고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을 밝힌
다.)
原文: 佛言,覩人施道,助之歡喜,得福甚大.沙門問曰,此福盡乎.佛言,譬如一炬之火,數千百人,各以炬
來分取,熟食除冥,此炬如故.福亦如之.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道를 베푸는 것을 보고 그를 도와 함께 기뻐한다면 福을 얻음이 아주 클 것이다. 어떤 사문이 물었다. 그러면 그 공덕은 다할 때가 있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유컨대, 한 횃불이 수천백인 횃불을 가지고 와서 그 불을 나누어 가지고 가서 음식을 익혀 먹거나 어둠을 밝히더라도 그 횃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 복덕도 이와같다
<第十一章>---擧田較勝(福田의 낫고 못함과 供養의 功德을 밝힌다.)
原文: 佛言,飯惡人百,不如飯一善人.飯善人千,不如飯一持五戒者.飯五戒者萬,不如飯一須陀洹.飯百
萬須陀洹,不如飯一斯陀含.飯千萬斯陀含,不如飯一阿那含.飯一億阿那含,不如飯一阿羅漢.飯十
億阿羅漢,不如飯一벽支佛.飯百億벽支佛,不如飯一三世諸佛.飯千億三世諸佛,不如飯一無念無
住,無修,無證之者.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 백명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고, 천명의 착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五戒를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만명의 오계 지키는 사람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만명의 수타원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만명의 사타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일억명의 아나함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십억의 아라한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백억의 벽지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천억의 삼세제불을 공양하는 것보다 한명의 無念, 無住, 無修, 無證한 사람을 공양하는 것이 더 낫다.
<第十二章>---擧難勸修(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들어 닦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有二十難.貧窮布施難.豪貴學道難.棄命必死難.得覩佛經難.生値佛世難.忍色忍欲難.見
好不求難.被辱不瞋難.有勢不臨難.觸事無心難.廣學博究難.除滅我慢難.不輕未學難.心行平等
難.不說是非難.會善知識難.見性學道難.隨化度人難.覩境不動難.善解方便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다. 가난하여 보시하기 어렸다. 돈 많고 지위가 높아 가지고는 道를 배우기 어렸다. 목숨을 버려 꼭 그렇게 죽기를 기약하기 어렵다. 佛經를 얻어 보기 어렵고, 살아서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렵다. 색심과 욕심을 참기 어렵다. 좋은 것을 구하지 않기 어렵다. 욕을 먹고 성내지 않기 어렵다. 권세를 가지고 臨하지(뽐내지) 않기 어렵다. 接하는 일마다 無心하기 어렵다. 널리 배워 두루 연구하기 어렵다. 아만을 버리기 어렵다. 무식한 사람을 깔보지(가볍게) 않기 어렵다. 마음씀씀이를 평등하게 쓰기 어렵다.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다. 自性을 보아 道를 배우기 어렵다. 형편을 따라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을 제도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를 당해 움직이지 않기 어렵다. 어떤 경우를 당해 움직이지 않기 어려우며, 방편응 잘 이해하기 어렵다.
<第十三章>---會道知命(宿命과 至道의 관계를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以何因緣,得知宿命,會其至道.佛言,淨心守志,可會至道.譬如磨鏡,垢去明存.斷欲無
求,當得宿命.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오떤 인연으로 宿命을 알 수 있으며, 지극한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보리심을 발하는 뜻을 굳게 지키면 지극한 道를 알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거울을 닦아 먼지가 없어지면 밝아지는 것과 같이, 욕심을 끊어 구할 것이 없으면 마땅히 숙명을 알 수 있다.
<第十四章>---眞修合道(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何者爲善,何者最大.佛言行道守眞者善,志與道合者大.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善이며 어떤 것이 가장 큰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도를 수행하여 참다움을 지키는 것이 善이요, 깨닫고자 하는 뜻과 道와 契合하는 것이 크다.
<第十五章>---忍智力明(힘이 많은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밝힌다.)
原文: 沙門問佛,何者多力,何者最明.佛言,忍辱多力.不懷惡故,兼加安健,忍者無惡,必爲人尊.心垢滅盡,淨無瑕穢,是爲最明,未有天地,逮於今日,十方所有,無有不見,無有不知,無有不聞,得一切智,可謂明矣.
解釋: 사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힘센 것이며, 어떤 것이 밝은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인욕이 힘센 것이다. 악한 마음을 품지 않겠되는 까닭에, 편안함과 씩씩함을 겸하게 된다. 또 참는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남의 존경을 받게 된다.
마음의 때가 다 없어져서 깨끗하게 더러움이 없는 것이 가장 밝은 것이다. 아직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방세계의 모든 것을 보지 않음이 없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듣지 못하는 것이 없어서 一切智를 얻은 것이니 가장 밝은 것이다.
講說: 비구는 인욕이라 했다. 인욕이 꺠달음에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머리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몸밖의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고 인식하는 정보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정보룰 모두 저장하는 능력까지 갖추어져 있는 것이 우리들의 인간이다. 그러나 정보를 받아들일 때 마치 햇빛이 물표면을 투과할 때 그 빛이 굴절 현상이 일어나듯이 우리들의 정보 체계도 받아들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第十六章>---斷欲見道(愛欲을 버리고 참된 도를 보기를 권한다.)
原文: 佛言,人懷愛欲,不見道者.譬如澄水,致手攪之,衆人共臨,無有覩其影者.人以愛欲交錯,心中濁
興,故不見道.汝等沙門,當捨愛欲.愛欲垢盡,道可見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애욕을 품어 道를 보지 못하는 것은 비유를 들자면 맑은 물을 손으로 휘저어 놓으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임하여도 그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애욕으로써 뒤섞어 엇갈리면 마음 가운데 탁함이 일어나기 때문에 道를 보지 못한다. 너희들 沙門은 마땅히 애욕을 버려야 된다. 애욕의 더러움을 버리면 도를 볼 수 있다.
<第十七章>---滅暗存明(無明은 自性이 없어서 道를 보면 곧 없어짐을 밝힌다.)
原文: 佛言,夫見道者,譬如持炬,入冥室中,其冥卽滅,而明獨存.學道見諦,無明卽滅,而明常存矣.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본다는 것은 비유를 들자면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안에 들어가면 그 어두움이 곧 사라지고 밝음이 홀로 있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서 진리를 보면 無明은 곧 사라지고 밝음만이 항상 있을 것이다.
講說: 진리를 본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음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因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覺者나 迷者나 모두 因果 法則에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迷者는 因果의 사슬에 매여 苦를 받으나 覺者는 因果의 法則을 잘 알아서 그 因果의 法則을 衆生 救濟의 그물로 삼는다. 즉 覺者는 항상 깨어있기 때문에 苦란 없다.
<第十八章>---無相會眞(佛法은 생각(念)과 행동(行)과 말(言)과 닦음(修)이, 모두 있음과 없음을
초월했음을 밝힌다.)
原文: 佛言,吾法念無念念,行無行行,言無言言,修無修修.會者近爾,迷者遠乎.言語道斷,非物所拘.差
之毫釐,失之須臾.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내 法은 無念의 念을 念하고, 無行의 行을 行하고, 無言의 言을 말하며, 無修의 修를 닦는다. 깨달은 者는 가깝고, 미혹한 者는 멀 뿐이다.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物에 끄달리는 바가 없다.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잃는 것은 순간이다.
講說: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 는 것은 모든 존재 자체가 원래 언어명상을 떠나 있다. 때문에 존재의 관찰도 관찰의 내용에 있어서 무언가 티끌만한 전제가 되는 意味가 끼여 있다면 이것은 반칙이다. 존재의 참모습은 커녕 왜곡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천지현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無念之念, 無行之行, 無言之言, 無修之修는 念, 行, 言, 修라는 相을 거부하는 철저하게 이것마져 집착하지 않는, 끼여들여 놓지 않는, 전제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 체험함을 말한다. 마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하는 도리와 같다. 즉 無念之念, 無行之行, 無言之言, 無修之修는 직접 알아차림이 지속되는 속에서의 체험의 사실을 말한다.
<第十九章>---觀中得道(오직 心識으로 자세히 관찰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을 가질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天地를 觀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세계를 관찰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알아차리며, 신영스러운 깨어있는 마음을 관찰하면 곧 깨어있음이 된다. 이와같이 알면 도를 얻음이 빠를 것이다.
<第二十章>---身本無我( 나 가 없음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땅히 몸 가운데 四大가 각기 스스로 이름은 있으나 도무지 나가 없다. 라고 알아차려야 된다. 나가 이미 전혀 없다면 그것은 幻과 같을 뿐이다.
註釋: 알아차림----當念身中四大의 念.
<第二一章>---好名無益(명예는 구할것이 못 된다는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정욕을 따라 名譽을 구한다. 명예가 드러날만 하면 몸은 이미 죽고 만다. 세상의 명예를 탐하면서 道를 배우지 아니하고 헛되이 힘만 들이고 몸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다. 비유을 들자면 마치 향을 사루어서 비록 사람들이 향내를 맡으나 향은 이미 재가 됨과 같다. 이와같이 몸을 태우는 불이 그 뒤에 있는 것이다.
<第二二章>---財色招苦(財物과 色의 害가 큼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에 있어서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칼 끝에 꿀이 묻은 있는 것과 같다. 한 번 빨아 먹는 맛에도 모자라는데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핥을 때는 곧 혀를 베일 근심이 있는 것이다.
<第二三章>---妻子甚獄(처자나 지옥의 번뇌를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처자나 집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심하다. 감옥은 사람을 석방할 기한은 있으나 처자는 멀리 떠날 생각조차 없다. 情愛은 色에 있어서 어찌 치달림을 두려워 하겠는가. 비록 호랑이 아가리의 근심이 있더라도 마음을 愛情에 두어 즐겁게 엎드려서 몸을 진흙에 스스로 던져 빠져든다. 그러므로 범부라고 하고, 그 문을 뚤고 나오면 티끌 번뇌를 벗어나 아라한이라고 한다.
<第二四章>---戀色障道(색욕이 중생의 가장 큰 병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은 색보다 심한 것이 없다. 색의 욕망은 그 크기가 끝이 없다. 다행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만약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이 능히 道를 닦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第二五章>---欲火燒身(애욕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愛慾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잡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이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된다.
<第二六章>---降魔化他(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天神이 玉女를 부처님에게 바처서 부처님의 뜻을 꺾으려고 할 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죽 주머니에 온갖 더러움을 가진 이여 너는 무엇할려고 왔는가. 물러가라 나에게는 필요 없다. 천신은 더욱 공경하게 道의 뜻을 물었다. 부처님은 그를 위하여 解說하여 주었더니 수타원果를 얻었다.
<第二七章>---逆情順性(道를 닦기 위해서 먼저 모든 장애를 떠나야 함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 사람은 마치 나무가 물에 있어서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다. 양쪽 기슭에도 걸리지 않고, 사람이 가지고 가지 않고, 귀신에게 막히는 바가 되지 않고, 소용돌이에 빠지지도 않으며, 썩지도 않는다면, 나는 이 나무가 결정코 바다에 들어가리라고 보장할 것이다. 道를 배우는 사람도 정욕에 미혹되지 않고, 온갖 삿된 일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無爲에 精進하는 이는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道를 얻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第二八章>---意馬莫縱(凡夫의 믿지 못할 것과 色의 禍를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너의 뜻을 믿지 말라. 너의 뜻은 믿을 수 없다. 삼가 색과 만나지 말라. 色과 만나면 화를 초래할 것이다. 아라한과를 얻어야만이 너의 뜻을 믿을 수 있다.
<第二九章>---正念觀女(여색을 멀리하여 허물을 막고 착함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삼가 여색을 보지 말라. 또한 함께 말하지 말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되면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되, 나는 사문이 되어서 탁한 세상에 처하여 있으나, 마땅히 연꽃처럼 더러운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라. 나이 많은 여인는 어머니 같이 생각하고, 손위가 되는 여인은 누님 같이 생각하며, 나이가 적은 이는 누이 동생으로 생각하며, 어린이는 딸처럼 생각하여 제도할 마음을 내면 악한 생각은 사라진다.
<第三十章>---欲火遠離(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해를 입지 말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마른 풀을 입은 것같이 하여 불이 오면 모름직이 피해야 하는 것이다. 道 닦는 사람은 欲心를 보거든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第三一章>---心寂欲除(욕심을 끊으려면 먼저 마음을 끊을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음욕이 그치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자기의 생식기를 끊고자 했다. 부처님은 그에게 일렀다. 그 생식기를 끊는 것은 그 마음을 끊는 것만 못하다. 마음은 마치 공조와 같아서 공조를 만일 그치면 그를 따르는 사람도 모두 쉬지만 삿된 마음을 그치지 않으면 생식기를 끊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부처님은 偈를 설하셨다. 욕심은 너의 뜻에서 생기고 뜻은 사와 상애서 생기니, 두 마음이 고요해지면 모든 색은 色이 아니요, 모든 行은 행이 아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이偈頌은 가섭불의 말씀이다. 라고 하셨다.
<第三二章>---離愛忘憂(걱정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김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애욕을 좇아 근신이 생기고, 근심으로부터 두려움이 생긴다. 만일 사랑을 떠나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가.
<第三三章>---精進破魔(道를 닦는 사람은 戒.定.慧를 갖출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 닦는 사람은 비유를 들자면 한 사람이 만 사람과 더불어 싸워서 갑옷을 입고 문을 나서자 마음이 혹 겁약하며, 혹 반쯤 가서 물러나기도 하며, 혹은 맞붙어 싸우다가 죽기도 하며, 혹은 이기고 돌아올 경우도 있다. 사문이 道를 배울 때는 마땅히 그 마음을 굳게 가져서 용감하게 나아가며, 앞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악마를 파멸하고 道果를 얻을 것이다.
<第三四章>---適中證理(도를 배우되 中道를 따라야 할 것을 밝힌다.)
解釋: 沙門이 밤에 가섭불의 遺敎經 을 독송하는데 그 소리가 쓸프고 긴장하여 후회하면서 (세속으로) 물러나고자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그에게 묻기를 너는 옛날에 在家에 있을 때, 일찍이 무엇을 業으로 하고 있었는가? 그가 대답하기를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습니다. 부처님은 마씀하시기를 줄을 늦추면 어떻던가? 소리가 울리지 않습니다. 줄을 아주 급하게 조이면 어떻던가? 소리가 끊어집니다. 줄의 늦춤과 조임이 알맞으면 어떻던가? 모든 소리가 두루 고릅니다. 사문이 道를 배우는 것도 또한 그와같다. 마음이 만약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道에 대하여 만약 너무 급하게 마음을 쓰면 몸이 피로하고 그 몸이 피로 하면 마음이 곧 괴로울 것이다. 마음이 괴로우면 수행이 곧 뒷걸음을 칠 것이고 그 수행이 이미 뒷걸음을 친다면 罪는 반드시 더해 갈 것이다. 단지 마음과 몸이 깨끗하고 편안해야만이 道를 잃지 않을 것이다.
<第三五章>---去染卽淨(더러움(번뇌)을 버려야 할 것을 깨우친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치 사람이 쇠를 단련할 때에 찌끼를 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그릇이 정밀하고 좋게되듯이, 道를 배우는 사람도 마음의 더러움을 재거하면 행실이 청정해 질 것이다.
<第三六章>---擧難再勸(아홉 가지의 어려운 일을 밝혀 사람을 깨우친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惡道를 떠나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이미 사람이 되었어도 여자를 버리고 남자되기 어려우며, 이미 남자가 되었으나 六根을 완전히 갖추기가 어렵고, 육근을 갖추었어도 중국에 태어나기가 어려우며, 이미 중국에 태어났어도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기 어려우며, 이미 부처님의 세상을 만났어도 道人을 만나기 어려우며, 이미 도인을 만났어도 신심을 일어키기 어려우며, 이미 신심을 일어켰었나 보리심을 발하기 어렵고, 이미 보리심을 발하였어도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음을 알기(통달하기) 어렵다.
<第三七章>---持戒得果(계율의 중함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佛子가 내게서 數 千里를 떠나 있더라도 나의 戒律을 항상 기억하면 반드시 道果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左右에 있어서 비록 항상 나를 보더라도 나의 계를 따르지 않는 다면 마침내 道를 얻지 못할 것이다.
<第三八章>---無常迅速(사람의 목숨은 떳떳함이 없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이 사문에게 묻기를 사람의 人命은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슴은 얼마 동안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자네는 아직 道를 모른다.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人命은 얼마 동안에 있는냐?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착하다. 자네는 도를 안다. 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講說: <無常>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다. 파타챠라尼는 持律第一 이라고 한다. 그녀는 출가 이전에는 비참하고 고난에 찬 생활을 보냈다. 테리가타(長老尼偈) 주석서에 적힌 그녀의 출가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출가하여 파타챠라라고 불린 그녀는 부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수행에 힘썼다.
어느날 그녀는 병에 물을 받아 가지고 와서 발을 씻은 다음 물을 버렸다. 맨 처음 버린 물은 조금 흐르다가 그쳐 버렸다. 두번째로 버린 물은 좀더 저만큼 흐르다가 그쳐버렸다. 세번째로 버린 물은 좀더 저만큼까지 흐르다가 역시 그쳐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맨 처음에 버린 물처럼 短命하여 요절하는 사람도 있고, 두번째의 물처럼 중년에 가서 죽는
사람도 있다. 또한 세번째의 물처럼 장수를 누리는 사람도 있지마는, 결국에는 누구나 다 죽
어 갈 수밖엔 없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부처님의 말씀이 귓가에 들려 왔다.
바로 그대로니라. 파타챠라야, 생명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죽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몸이나
마음이나 사물이나, 모두 다 생겨났다가는 사라져 간다는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백년동안을
사느니보다는, 이 같은 이치를 깨닫고 단 하루, 아니 한 찰라만이라도 사는 것이 더 나으니
라.
이 말씀을 들은 순간에 파타챠라는 성자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 때의 부처님의 말씀은 <법구경113(若人壽百壽,不知成敗事,不如生一日,見微知所忌. 비록 사람이 백 살을 살아도 일의 成敗를 알지 못하면, 단 하루를 살아도 기미를 보아 꺼릴 바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에 기록되어 있다. 테리가타(長老尼偈) 은 이러한 禪體驗 過程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읊고 있다.
저는 두 발을 씻고,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발 씻은 물이 높은 곳
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가는 것을 보고, 저는 혈통이 좋은 駿馬를 길들이듯 마음을 가
라앉혔습니다. <제114편>
그리고 나서 등불을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누울 자리를 바라다 보고서 침
상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제115편>
이윽고 어둠을 밝히고 저는 바늘을 잡고 등심지를 낮추었습니다. 그러자 불꽃이 스러지듯
마음은 해탈했습니다. <제116편>
<呼吸>은 바라문교에 있어서 不變의 아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원의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은 관념일 뿐이다. 비파사나 禪修行에 호흡 관찰이 있다. 결국 호흡에 不滅의 自我,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밝혀진다. 오로지 호흡은 無常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 생명의 영원성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人命은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한 것이다. 모두 선수행의 체험에의한 결과이다.
<第三九章>---依敎無差(모든 경전은 마땅히 믿어 좇아야 할 것임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불도를 배우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모두 마땅히 믿고 따라야 한다. 비유를 들자면 꿀을 먹으면 한 가운데나 가가 모두 단 것과 같이, 내가 설한 경전도 또한 이와같다.
<第四十章>---修行在心(도를 행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
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沙門이 道를 行할 때, 마치 磨牛와 같이 하지 말라. 몸은 비록 道를 行하나 마음은 道를 行하지 않는 것이니, 마음의 道만을 行할 것 같으면, 무슨 道를 行할 것이 있겠는가?
註釋: 磨牛는 磨坊之牛이다. 磨坊이란 製粉所를 말한다. 말하자면 맷돌을 돌리기 위해 소를 이용하여 방아을 찢는데, 소를 이용한다. 이때 소는 맷돌에 매여서 빙빙 돌면서 맷돌을 간다. 사람은 뒤에서 채칙을 가지고 소를 독촉한다. 이때의 소는 自由를 잃어버리고, 자기 생각되로 되지 않는다. 몸은 주인이 하자는 데로 하지만 자기의 의사와 상관이 없다. 때문에 수행자도 이 소와 같이 몸은 방아를 찟듯이 도를 행하나 소의 자기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듯이 수행자도 도를 행하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한다.
<第四一章>---直心出塵(곧은 마음으로 항상 도를 생각할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대저 道를 닦는 사람은 마치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깊은 짆흙 속을 지나가듯이 피로가 극에 달하여 감히 좌우를 돌아볼 사이도 없다가 진흙길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는 것과 같이, 沙門도 마땅히 情欲이 진흙보다 甚하다는 것을 관찰하라. 그리고 곧은 마음으로 항상 道를 잊지 말고 알아차려야만이 人生苦를 벗어날 수 있다.
<第四二章>--- 一切如幻(부처님의 눈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것을 밝힌다.)
解釋: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왕후의 지위를 문틈으로 지나가는 먼지와 같이 보고, 금옥의 보배를 마치 기와와 조약돌과 같이 보며, 희고 고운 명주옷을 빛 바랜 해진 비단옷 같이 보며, 大千世界를 마치 겨자씨 처럼 작은 알같이 보며, 阿욕池의 물을 마치 발에 바르는 기름과 같이 보며, 方便門을 마치 幻化의 금은보화 보물무더기처럼 보며, 無上乘을 마치 꿈속의 금이나 비단같이 보며, 佛道를 마치 눈앞의 꽃과 같이 보며, 禪定을 마치 수미산의 기둥과 같이 보며, 涅槃을 마치 아침 저녁으로 깨어 있는 것과 같이 보며, 倒正을 마치 六龍이 춤추는 것과 같이 보며, 平等을 마치 一眞地와 같이 보며, 敎化를 일으킴을 마치 四時의 나무처럼 보는 것이다.
註釋: 訶子는 범어 haritaki의 음역이다. 訶梨勒, 訶利勒이라고도 쓰고, 天主持,天主將來라고 飜譯한다. 印度에서 생기는 喬木의 果樹로, 그 果實은 藥用으로 쓰인다.
(불교학대사전 p.p.5--6, 홍법원)
第四十二章----------< 있는 그대로 보라(如實知見) 의 三佛眼>
1 名位------------
2 財富------------ 言語의 世界에는 名譽나 地位나 財産, 衣食
등이 존재하나 實相의 世界에는 존재하지 않
註釋: 1, 空觀(世間法)五----- 는다. 말하자면 언어는 實在가 아니다. 그러
<본래 存在하지 않는 것을 나 우리의 일상 생활에 있어서 언어가 指示
있다 라고 錯覺하여 執着 하는 그것이 존재하는 것같이 여긴다. 실재
한다. 遍計所執自性이다. 에 있어서는 錯覺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작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作 품일 뿐이다. 事實의 세계는 相對的이다. 때
品이다. 故로 一切唯心所 문에 실체성이 없다. 비여 있다. 즉 空이다.
造이다.> 언어의 세계는 有와 無의 세계이다. 有無의
세계는 觀念의 세계이다.
3- 衣食---------
4 世界------------
大小多少는 妄想이다. 즉 大小多少는 唯心
所造이다.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가는
5 河海------------ 道理이다. 旗도 바람도 아닌 마음이 흔들일
뿐이다.
6 方便--------------佛眼觀之,不過對機說法,爲實施權.直與幻人變
化種種珍寶,掩人耳目無異.故曰視方便門,如化
寶聚也.
7 大乘--------------無上乘,能至寶所,非復方便門之僅止化城可比.
是實至高無上止果法矣.然佛眼觀之,不過究竟圓
滿,顯其所隱.所謂圓滿菩提,歸無所得.亦如夢
中,得有金帛,意出望外.태至覺來,全屬固有,別
無所得.故曰視無上乘,如夢金帛也.
*태:미칠태(이름)
2, 假觀(出世間法)五-8- 佛道--------------佛眼觀之,則佛道雖高,不過爲衆生解粘去縛,返
<無明(不覺)에 의하여 始覺 妄歸眞而已.- - - 若轉凡情,卽無聖道.- - -譬
이 생기고 始覺에 의하여 如空中,花花絮絮燦爛奪目.實皆根塵交偶而後現
本覺에 돌아간다. 이때의 前.若脫根塵,花亦寂滅.故曰視佛道,如眼前華
始覺이란 方便과 無上乘과 也.
佛道와 禪定과 涅槃이 필요
하다. 그러나 始覺이 本覺 9 禪定--------------佛眼觀之,禪定雖妙,不過諸心心所之相,見,自
으로 되돌아 오면 始覺이 證,證自證,四分合成.譬如須彌出海,狂風駭浪,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상 걸然不動.亦唯四寶四微合成而已,豈眞別有實法
대적이다. 그러므로 깨달 哉.故曰視禪定,如須彌柱也.
음을 얻으려면 時節因緣을
보라 라고 한 것이다.> 10 涅槃--------------佛眼觀之,則涅槃雖勝,亦對生死而言.惟生死爲
無明所纏,則長夜漫漫,晝夕咸寐.涅槃乃智慧已
開,則永日朗朗,晝夕咸寤.亦非生死之外,別有涅
槃實法.故曰視涅槃,如晝夕寤也.
11 倒正----圓中諦---背覺合塵名爲倒,而實無減.背塵合覺名爲正,
而實無增.故但如六龍舞,不過首尾相換而已.
一切諸法,皆屬相對.覺之卽正而不增,不覺卽
倒而不減.故如六龍之舞,但換首尾而無實法
也.
3, 中觀(世出世間法)三 12-- 平等----大眞諦---諸法旣皆平等.則隨擧一微塵法,卽與一眞如
<깨닫고 보면 시작과 끝이 地平等.非離一切法外,別有一大總相法門.直
없음을 알게된다. 본래 是頭頭法法,無非大總相法門也.
그대로의 세계일 뿐이다. 色心不二,因果不二,修性不二,染淨不二,- - -
正과 倒가 본래 실체가 없 一切皆屬止觀之妙境,相入相卽,無非中道實
고, 일대 대평등이다. 깨쳐 相.故如一眞法界之理地,同一不受纖塵,而別
서 눈이 열린 사람은 중생 無實法也.
교화를 하더라도 구제된 중
생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13 興化----大俗諦---依一眞地而施化道.如依大地而有四時之木.
중새제도는 인연에 따라 春生夏榮,秋實冬落.番番生.番番榮.番番實.
유희할 뿐이다. 그것도 끝 番番落.終而復始.始而復終.遍於十方.亘於
없이 왜냐하면 法이 無始 三世.皆是如來自在神力也.
無終이기 때문이다. 視興化如四時木者,興化謂佛之本懷,志在普
참으로 눈뜬 사람만이 行할 利群倫,不以自利爲限.由前二觀,降魔成道,
수 있다.> 已得自受用三昧.而今復以已所證悟之法,轉
以化他,令皆受用.
- - - 사십이장경 과표 - - -
<<序分>>
<<正宗分>>
<第一章>---出家證果(修行僧이 세속을 떠나 수행함으로써 얻는, --- 위 없는 깨달음
깨달음의 네가지를 밝힌다.)
<第二章>---達理崇道(出家 修行者의 깨달음에는 네 가지 차별이 ---출가의 목적
있으나 그 참된 이치에는 차별이 없음을
밝힌다.) -- 걸림없는 해탈
<第三章>---割愛知足(愛欲을 끊어 道를 이루는 방법을 밝힌다.)
<第四章>---止惡行善(사람의 착함과 악함이 오직 그의 業에 있음
을 밝힌다.)
<第五章>---悔過滅罪(허물을 고쳐 착한 길로 나아가기를 권한다.) -- 善은 열반에
<第六章>---忍惡無瞋(善은 능히 惡을 이기고 惡은 善을 부수지 나아가는 지름
못함을 밝힌다.) 길
<第七章>---謗佛招禍(위의 第六章의 견디어 참는 본보기를 밝힌
다.)
<第八章>---害賢自損(착한 사람을 해치는 죄악을 깊이 경계함)
<第九章>---立志體道(수행의 바른 길을 밝힌다.)
<第十章>---助施得福(남의 착한 일을 보고 마치 자기가 한 일 발심수행 방법
처럼 따라서 기뻐하는 공덕을 밝힌다.) --으로써의 회광
<第十一章>---擧田較勝(福田의 낫고 못함과 供養의 功德을 반조와 보시회향
밝힌다.)
<第十二章>---擧難勸修(사람에게 스무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無知에 의한 스
들어 수행하기를 권한다.) 무 가지 장애
<第十三章>---會道知命(宿命과 至道의 관계를 밝힌다.) 모든 것중에
<第十四章>---眞修合道(착한 것과 큰 것의 뜻을 밝힌다.) --道와 契合하는
<第十五章>---忍智力明(힘이 많은 것과 가장 밝은 것의 뜻을 것이 가장 크고
밝힌다.) 깨달음이 가장
밝다.
<第十六章>---斷欲見道(愛欲을 버리고 참된 도를 보기를
권한다.)
<第十七章>---滅暗存明(無明은 自性이 없어서 道를 보면 곧
없어짐을 밝힌다.) --알아차림(깨여
<第十八章>---無相會眞(佛法은 생각(念)과 행동(行)과 말(言)과 있음, 觀 또는
닦음(修)이, 모두 있음과 없음을 초월했음 看)이 道를 얻
을 밝힌다.) 게 한다.
<第十九章>---觀中得道(오직 心識으로 자세히 관찰해서 거짓을
버리고 참을 가질 것을 밝힌다.)
<第二十章>---身本無我( 나 가 없음을 밝힌다.) ---출가 생활
<第二一章>---好名無益(명예는 구할것이 못 된다는 것을 밝힌다.)
<第二二章>---財色招苦(財物과 色의 害가 큼을 밝힌다.)
<第二三章>---妻子甚獄(처자나 지옥의 번뇌를 밝힌다.) -- 깨여있음을
<第二四章>---戀色障道(색욕이 중생의 가장 큰 병임을 밝힌다.) 흐리게 하는
<第二五章>---欲火燒身(애욕을 가까이하지 말 것을 밝힌다.) 渴愛(칼날에
<第二六章>---降魔化他(부처님이 애욕을 멀리한 본보기를 보인다.) 묻은 꿀)
<第二七章>---逆情順性(道를 닦기 위해서 먼저 모든 장애를 떠나야
함을 밝힌다.)
<第二八章>---意馬莫縱(凡夫의 믿지 못할 것과 色의 禍를 밝힌다.)
<第二九章>---正念觀女(여색을 멀리하여 허물을 막고 착함으로 나아
가는 방법을 밝힌다.) --바른 견해를
<第三十章>---欲火遠離(모든 욕심을 멀리해서 그 해를 입지 말 것을 세워야 한다.
밝힌다.)
<第三一章>---心寂欲除(욕심을 끊으려면 먼저 마음을 끊을 것을
밝힌다.)
<第三二章>---離愛忘憂(걱정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김을
밝힌다.
<第三三章>---精進破魔(道를 닦는 사람은 몸으로 보시와 지계, 마음
으로는 인욕, 선정, 지혜를 끊임없이
행한다.)
<第三四章>---適中證理(도를 배우되 中道를 따라야 할 것을 밝힌
다.)
<第三五章>---去染卽淨(더러움(번뇌)을 버려야 할 것을 깨우친다.)
<第三六章>---擧難再勸(아홉 가지의 어려운 일을 밝혀 사람을 깨우
친다.) --정진과 그 방법
<第三七章>---持戒得果(계율의 중함을 밝힌다.)
<第三八章>---無常迅速(사람의 목숨은 떳떳함이 없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힌다.)
<第三九章>---依敎無差(모든 경전은 마땅히 믿어 좇아야 할 것임을
밝힌다.)
<第四十章>---修行在心(도를 행하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외형
에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第四一章>---直心出塵(곧은 마음으로 항상 도를 생각할 것을
밝힌다.) --있는 그대로
<第四二章>-- 一切如幻(부처님의 눈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보라
것을 밝힌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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