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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경전

– 불교성전

티벳 死者의 書--1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1)

작성자
보리행
작성일
2005-07-15 10:04
조회
14230


제  목:  <티벳 死者의 書>

           티벳 사람들에게는 <中間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                 에 이르게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음.



영역본명 :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영역자 : Robert A.F. Thurman

출판사 : BANTAM BOOKS

출판년도 : 1994년 1월.

판권소유 : 1994 by Robert A.F. Thurman



한글판 번역자 : 정 창 영



참고사항: 이 책은 <시공사>와 <Bantam Books>가 한국어판 출판 계약을 맺고, 현재 출판 준비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상업용으로 복제 출판한다면 저작권에 관련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읽으신 다음 잘못된 부분이나 고쳤으면 좋을듯한 표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면 원고를 다듬어 더 좋은 번역본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이번 작업을 위해 나름대로 세운 번역 원칙을 소개하겠습니다.

1. 문법적인 형식의 일치 보다는 내용의 동등성을 먼저 고려한다.

2. 번역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        는 한 문단 안에서 문장 순서의 재배열도 가능하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방법은 삼간다.

3. 수동태 문장은 될 수 있는한 능동태 문장으로 바꾼다.

4. 불교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을 위해, 불교의 전문 용어는 가급적 서술        적 표현으로 바꾸거나 함께 표기한다.

5. 원문의 관용어나 관용적 표현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본문이 지닌 뜻        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때        는 우리말의 용법에 따라 적절히 표현을 바꾼다.









달라이 라마의 서문



서구 세계에 <티벳 死者의 書>로 알려진 <바르도 쉐돌>은 티벳 문화가 산출해 낸 아주 중요한 책 중에 하나다. 서구인들은 우리 티벳인을 대단히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땅 위에서 실제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죽음을 신중하게 맞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라고 여긴다. 다소 빠르고 늦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죽음의 과정을 고통 없이 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등을 우리 티벳인들은 실제적인 문제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티벳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인간적으로 잘 죽는 방법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中間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책>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티벳에서 이 책은 아주 일반적인 책이다. 이 책은 자신이나 가족 또는 친구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실려 있는 안내서이다. 티벳에는 죽음과 그 현상을 조사하고 탐구한 문헌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이 책도 그 중에 하나다. 모든 불교 사회에서, 죽음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덕스럽고 지성적으로 행동하도록 고무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죽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두려움을 벗어버릴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삶을 건강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의 옛친구 로버트 터만 교수가 이 중요한 책을 새롭게 번역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그는 실력은 물론 헌신적인 마음까지 겸비한 학자다. 나는 그가 정확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서구 독자들을 위해 훌륭한 번역을 했다고 확신한다. 티벳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서구의 독자들도 이 책을 근본적으로 유용하고 깨달음을 빛을 비쳐 주는 책으로 인식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달라이 라마 친필 서명

1993. 1. 29.





영어판 번역자의  머  리  말



여러해 전이었다. 스승 게쉬 가왕 왕걀은 <티벳 사자의 서>라고 제목이 붙은 인도에서 출판된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었다. 그는 게쉬 가왕 왕걀 수도원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무엇이든 한 번 들으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분명하게 말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자, 앞으로 이 책이 필요할거야!"라면서 그 책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당시로는 다른 일 때문에 그 책을 연구하는 데 몰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스승의 통찰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 여기고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했다.

나는 카지 다와-삼둡과 에반스-벤츠가 공역한 <티벳 死者의 書>를 오랜 전부터 알고 있었다. <티벳 死者의 書>라는 책 이름은 에반스-벤츠가 번역한 영역본 제목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실 이 제목은 잘못 붙여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책을 읽었고, 친구나 친척이 죽으면 그 책을 이용하곤 했다.  그 책은 죽음 이후에 누구나 거쳐야만 되는 과정, 즉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나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또 프란체스카 프레맨틀과 초걋 뚜룽빠가 함께 옮긴 책도 읽어보았다. 뚜룽빠의 번역본에 대해서는 몇 해 전에 관련 학술지에 논평을 기고한 일도 있다. 그의 번역은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반스-벤츠의 번역보다는 낫다.

<티벳 死者의 書>는 8, 9세기 경에 위대한 스승 파드마 삼바바가 인도와 티벳의 불교도들을 위해 쓴 책이다. 파드마 삼바바는 후세대를 위해 그 책을 감추어 놓았는데, 14세기에 이르러 유명한 비장 문헌 발굴자인 까르마 링빠에 의해 발견되었다. 내용은 죽은 사람이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中間界(티벳어로 bar-do)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사람은 대개 자신의 기대에 상응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기대하는 내용에 따라 신성한 우주를 묘사하고 있는 만다라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붓다와 보살과 신들 중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을 만나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의 붓다와 보살을 만나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쯔옹 까빠(1357-1419)가 화려하게 전개시킨 구야사마자Guhyasamaja 요가 탄트라 수행을 했다. 이 요가 탄트라는 내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비밀스럽게 전수되어 온 수행법으로써 그 체계와 설명이 현대의 과학기술 못지않게 정교하게 짜여 있다. 이 수행 체계는 마음과 자아, 삶과 죽음, 그리고 中間界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특별한 요가 기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죽음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죽음의 육체적인 측면, 심리적인 측면, 정상적인 죽음의 경험, 요가 수행 중에 체험하게 되는 죽음의 상태 등에 대한 매우 자세한 가르침이 이 요가 탄트라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가르침이 매우 명쾌하고, 죽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생명과 삶과 건강에 대해서도 대단히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수행법을 배운 이후, 나 자신의 죽음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이 요가 탄트라의 가르침에 따라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탄트라 요가를 배운 후에 <티벳 死者의 書>를 다시 보았을 때, 나에게는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며, 현대적인 죽음의 체험과도 잘 조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티벳 死者의 書>는 요가 수행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대중을 안내할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었다. 나는 스티븐 레빈Stephen Levine을 비롯하여 현대 미국인들에게 죽음과 관련된 요가를 소개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보았다. 그들은 <티벳 死者의 書>에 나오는 상징들이 현대인에게는 낯설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기조차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톨레도나 도피카에 사는 사람 중에서 <티벳 死者의 書>에 나오는 헤루까(영웅적인 남성의 원형을 상징하는 신)나 다끼니(활력이 넘치는 여신, 또는 천사)를 만났을 때 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나 무시무시한 모습의 진노의 신을 만날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는 유대교이든 기독교이든, 그들이 속해 있는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죽음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티벳 死者의 書> 보다는 요가 탄트라의 문헌에 나오는 죽음에 대한 묘사가 훨씬 더 체계적이고 명확하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 밴텀 북스BANTAM BOOKS에서 <티벳 死者의 書>를 현대적인 해설을 붙여 다시 번역하자고 제의했을 때, 내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밴텀 북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쪽으로 마음이 거의 굳어졌을 때, 스승의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 나는 집에 와서 에반스-벤츠와 뚜룽빠의 번역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스승이 준 티벳어 판도 대충 훑어보았다. 그 결과 죽음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에반스-벤츠나 뚜룽빠의 번역서가 제공하는 것 보다 더 쉽고 명확하고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티벳 死者의 書>라는 제목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이름은 副題로 삼았으면 좋겠다. 티벳어 판에는 "死者의 書"라고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 없다. 티벳어 판의 原題인 Bardo thos grol에서 bardo는 단순히 "중간계(中間界)"라는 뜻이다. 中間界란 일반적으로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기간과 과정을 가리킨다. 티벳 사람들은 中間界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中間界(이승 중간계), 잠과 깨어 있음 사이의 中間界(꿈 중간계), 깨어 있음과 초월 사이의 中間界(명상 중간계), 그리고 죽음 직후의 中間界(죽음 중간계),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中間界(저승 중간계), 태어나기 직전과 태어나는 순간 사이의 中間界(탄생 중간계).

티벳어로 토스 빠Thos pa는 듣고 배움으로 개발되는 지혜나 관조를 통해 개발되는 지혜, 혹은 명상을 통해 개발되는 지혜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thos grol이라는 말은 이 책이 오랜 시간의 관조나 명상이 아니라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리하여 中間界에 관한 이해가 깊고 명확해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흔히 이 책을 <中間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책>(Bardo thos grol chen mo)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은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라는 방대한 문헌의 일부이다. (앞으로는 <티벳 死者의 書>를 포함하고 있는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라는 문헌 제목을 <명상을 통한 해탈>이라고 줄여서 표기하겠다.)

나는 티벳어 판의 제목에 깊이 고무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육체 주위를 떠돌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알아듣기 쉽도록 쉬운 말로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방대한 요가 탄트라의 문헌에서 수집한 죽음의 과정에 대한 개념과 설명을 해설로 붙이기로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작업을 하는 중에 신뢰할 만한 몇몇 티벳어 판 본문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스승이 나에게 주었던, 인도에서 출판된 책 보다 더 믿을 만했다. 그것을 통해 애매했던 부분이 많이 밝혀지기도 했다. 또 앞서 언급한 <명상을 통한 해탈>이라는 방대한 문헌에서 <티벳 死者의 書>의 가르침을 보다 더 명확하게 확인해 주는 몇 개의 章을 번역해서 부록으로 실었다. 아직 번역된 적이 없는 부분들이다. 이번 작업이 나에게는 매혹적이었으며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 스승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며,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유용하게 되길 바란다.



1992년 8월, 뉴욕의 '간덴 데끼 링'에서

로버트 A. F. 터만



附記 : 일반적인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각주를 다는 것을 피했다. 필요한 정보는 그 페이지에서 다 읽을 수 있도록, 해설을 본문 단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낯선 용어와 개념들은 책 뒤에 별도로 어휘 사전을 만들어 붙였다. 거기에서는 특별한 개념이나 중요한 이름, 장소, 물건 등에 관한 간단한 해설을 실었다.



□ 제 1 장 □

   배   경



1. 티벳의 역사



티벳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뵈Bo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카와잔 뵈Khawajen Bo라고 한다. "눈 덮인 땅"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역사 기록은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제국,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중국의 周 왕조 말기와 비슷한 시기이다. 티벳 역사 초기 8세기 동안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왕조가 통치했다. 종교적으로는 무당들이 주도하는 占, 마술, 희생 제사가 널리 행해지는 精靈信仰(애니미즘)의 시대였다. 정치적 세력은 王家에 집중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王族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첫 번째 7명의 왕은 허공에 걸린 마법의 사다리를 타고 그 땅을 다스리기 위해 내려 왔으며, 죽을 때가 되면 다시 그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궁정 내부에 모종의 갈등이 생기자, 8번째 왕이 사다리가 매달린 밧줄을 끊어 버렸다. 그때부터 티벳 왕들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아내와 부장물과 함께 거대한 무덤 속에 묻혔다.

초기 왕조는 동쪽에서 오늘날의 쩨땅 근처인 짱추 방면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얄룽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종족들을 정복하고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리하여 군사력을 기반으로 봉건제도가 확립되었다. 티벳 왕조에 병합된 각 종족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고, 언어와 종교적인 경향도 비슷했기 때문에 쉽게 융합되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넓이 약 100만 평방 마일, 평균 높이 약 4000미터에 달하는 티벳 고원이었다. 그렇게 높은 지역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도 타고나야 한다. 그곳 토박이의 후손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티벳 말은 그 주변 국가인 고원 아래의 몽골, 인도, 중국, 터키 어 등과 상당히 다른 티벳-버마 語族에 속한다. 고대의 티벳 사람들은 자연계의 사물이나 현상, 특히 산과 하늘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땅 아래, 땅 위, 그리고 하늘에 있는 수많은 신들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드리고 점을 치는 종교 행위가 성행했다.

고원 산악 지대의 문화는 평지의 문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고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수명이 짧다. 그리고 장관을 이루고 있는 주변 산들은 자연스럽게 명상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분위기를 실제 생활에 연결시켰다. 대부분의 샤머니즘이 그러하듯이, 고대 티벳의 샤머니즘도 현실적인 성공, 전쟁에서의 승리, 건강, 부, 자손의 번창 등을 구했다. 특히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시기에는, 용한 무당이 왕권 수호를 비는 굿판을 벌이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었다. 그에게는 절대 권력이 주어졌다. 무당은 하늘에서 왕의 후손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굿이나, 왕이 내려온 것을 축하하고 왕국의 안녕을 위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신들의 도움을 청하는 굿을 주도했다. 옛 왕이 물러간 다음 새 왕을 등극시키는 것도 무당의 일이었다. 왕권이 바뀌는 공백 기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서 자문을 받아 오기도 했다. 무당은 죽은 자들 세계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혼돈의 힘이 산 자들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도 했다.

티벳 왕조 문화는 여러 세기 동안 번성했다.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종족들은 높은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티벳을,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침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대 티벳 문화는 외부의 간섭 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티벳 종족들 간의 영토 분쟁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A.D. 6세기에는 고원 지대 전체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되었다. 통일로 인해 강력해진 티벳 제국은 고원 아래 지역을 사방으로 점령해 나갔다. 그리하여 중국, 몽골, 터키, 인도 등에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군사적인 대제국 건설은 7세기 초, 송쩬 감뽀 황제 시대에 마무리되었다. 무력을 기반으로 한 통일 제국은 그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티벳 사람들은 고원 아래 평지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일에도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송쩬 감뽀는 윤리와 도덕에 토대를 둔, 보다 평화적이고 영적인 방향으로 티벳 문화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는 인도의 팔라 왕조와 후-굽타 왕조, 실크로드 주변에 산재한 중앙 아시아의 여러 도시국가, 그리고 중국 唐나라의 정신적인 등뼈가 된 대승불교를 받아 들여 티벳 문화를 체계적으로 개혁해 나가기 시작했다.

송쩬 감뽀는 학자들을 인도로 보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산스크리트어를 기반으로 티벳 문자를 만들어, 여러 가지 불교 문헌을 티벳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 아홉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 중에는 네팔과 唐나라의 공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수많은 불경과 불교 예술품을 티벳으로 끌어 들였다. 또한 새로운 도읍지 랏사에 조캉과 라모체라는 왕궁 사원을 건립하여, 온 나라의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다.

이후 약 250년 동안, 티벳의 왕들을 송쩬 감뽀의 뒤를 이어 문화적인 개혁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경전 번역, 연구 기관 설립, 사원 건축, 교육 사업 전개 등이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이 문화적인 개혁은 치송 데쩬 시대인 79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치송 데쩬 황제는 인도에서 온 성자 파드마 삼바바와 철학자 샨타라크쉬타의 도움을 받아 삼예에 티벳 불교 최초의 僧院을 세웠다. 샨타라크쉬타가 그 승원의 승원장이 되었다. 이때 인도의 불교 대학 제도와 커리큘럼이 함께 소개되었다. 치송 데쩬은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다방면의 학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술 도입 사업은 이후 60년 동안 계속되었다. 불교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수학, 약물학, 시, 예술, 정치학, 조각 등 다방면의 학문이 이때 발전했다. 페르시아, 인도, 위굴, 몽골, 중국의 唐나라, 그리고 실크로드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에서 학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비교하고 조화시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티벳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갖기에 이르렀다. 한 가지 예로, 830년 대에는 세계 각처에서 수백 명을 학자를 초청한 다음 그들에게 10년 동안 인도, 중국, 페르시아, 몽골, 위굴의 의학 체계를 비교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그 결과로 건강에 관련된 불교의 영적인 가르침에 더하여 심리학, 해부학, 신경생리학, 외과 의학, 식물학, 화학, 영양학 등이 종합된 티벳 특유의 의학 체계가 성립되었다.

삼예가 종교적인 중심지가 된 이후, 치송 데쩬의 후계자들은 삶 전체를 불교화 할 것을 강요했다. 강요의 도가 지나쳤던 까닭에 王家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거듭되었다. 암살과 반란이 계속되면서 통일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불교 탄압도 있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불교의 가르침과 제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 지방 귀족들의 보호 아래 백성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3세기 동안, 백성들은 점점 더 깊이 불교에 빠져들었다. 불교적인 교육 제도가 재확립되고, 전국 방방곡곡에 승원이 세워졌다. 방대한 불경 번역 작업도 이 시기에 완료되었고, 티벳 고유의 불교 문헌들도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로는 티벳 제국 전체를 통치하는 통일 왕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 패권주의가 나타날 가능성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 백성들의 마음 속에 불교의 비폭력에 대한 가르침이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지방의 귀족들이 자기 지역을 다스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급속히 확장하던 승원 세력에 사회적.정치적 관할권을 점점 더 많이 넘겨주게 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일대를 통일했다. 그때 티벳도 대몽골 제국의 관할권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티벳 사람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티벳은 이미 13개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지역은 지방 귀족과 승원이 협력하여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쿠빌라이 칸은 티벳 불교의 사키야 파와 콘 가문에게 티벳의 통치권을 주었다. 그러나 사키야 파는 정치적인 세력보다는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 14세기가 끝나 갈 즈음, 몽골 제국의 세력이 약화되자 토착 팍모드루 왕조가 일어나 티벳 통치를 자임했다. 쯔옹 까빠가 주도한 종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은 그 즈음이다.

쯔옹 까빠는 1409년 수도 랏사에서 범민족적인 불교 축제를 열어, 민족 전체가 불교 수행에 헌신하는 새 시대의 막을 열었다. 쯔옹 까빠는 그 축제에서 붓다의 영원한 현존에 대한 민족적인 깨달음을 상징하는 행위로, 화려하게 장식된 조보 린포체(아띠샤)의 불상을 조캉 사원에 봉안했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온 백성이 모여 2주 동안 종교적인 축제를 벌이는 전통은 그 때부터 생긴 것이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일상적인 모든 일이 중지되고, 승원장들이 시민의 모든 일을 책임진다. 이 축제는 1960년 티벳 정부가 인도로 망명할 때까지 티벳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로 치러졌다.

쯔옹 까빠가 불어 일으킨 개혁의 바람은 15세기와 16세기에 이르러 꽃이 피었다. 티벳 사람들의 영적, 사회적, 현실적인 삶 전체가 변화되었다. 각 지역에서 승원의 영향력이 커졌고, 인생 전체를 포기하고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남녀 구도자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점 더 평화로운 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군인이 점점 줄어들어 지방 귀족을 호위하는 몇 사람 정도만 남게 되었다. 쯔옹 까빠가 창시한 겔룩파는 젊은 제자 겐둔 드룹빠(제 1대 달라이 라마)가 이끌어 나갔다.

겐둔 드룹빠는 오랜 세월 동안 영감이 넘치는 가르침을 베풀고 글도 많이 남겼다. 여기저기 사원도 많이 건립했다. 그가 죽은 다음, 태어나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자기가 겐둔 드룹빠라고 자칭하는 어린 아이가 나타났다. 그 아이는 겐둔 드룹빠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여러 가지 시험을 거치고 상서로운 징조들을 종합한 결과 위대한 스승 겐둔 드룹빠의 還生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충분한 교육을 받은 다음, 겐둔 갓초(제 2대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으로 겔룩파를 이끄는 영적인 스승이 되었다. 그의 다음 번 還生도 비슷한 시험과 징조를 통해 승인 받아, 소남 갓초(제 3대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갖고 16세기 어간에 겔룩파를 이끌었다.

1573년 소남 갓초가 몽골을 방문했을 때, 몽골 황제 알탄 칸은 그에게 '달라이 라마'(바다와 같은 스승)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헌사 했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는 이렇게 소남 갓초가 처음 들은 것이지만, 티벳 사람들은 그를 그의 앞선 두 前生의 뒤를 이은 제 3대 달라이 라마로 여긴다.

소남 갓초와 그의 뒤를 이은 제 4대 달라이 라마 욘뗀 갓초 시대에, 세속의 통치자들은 지속적으로 확산되던 종교 부흥 운동을 못마땅히 여겼다. 너나 할 것 없이 승려가 되려고 나섰고,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사원을 건립하고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티벳은 동시대의 북유럽이나 중국 또는 일본처럼 군부 독재자가 나타나 종교 중심의 삶을 산산 조각내 버리느냐, 아니면 세속의 지도자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영적인 진화의 길을 받아들일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조캉 대승원이 건립된 지 거의 천 년이 지난 1642년, 제 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갓초(1617-1682)는 간덴 宮을 건립하고 티벳의 왕으로 즉위했다. 티벳 사람들은 그 이후 오늘날까지, 僧王 달라이 라마가 통치하는 간덴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여긴다. 티벳 사람들이 '위대한 5대'라고 부르는 이 첫 번째 僧王은, 티벳의 사회적 특성에 적합한 독특한 정치 제도를 만들었다. 그는 승원과 비폭력이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체제를 구축했으며, 사실상 귀족 집단을 없애 버렸다. 그들이 세습적으로 물려 오던 토지를 몰수하고, 간덴 정부 아래서 일한 만큼 받는 보수로 살아가게 했다. 귀족들은 더 이상 私兵을 거느릴 수가 없었다. 봉건 영주로써 소작 농민들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흔들던 그 당당하던 세력도 완전히 날개가 꺾였다. 당시 티벳의 소작 농민들은 중세 유럽이나 러시아의 농노들처럼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티벳은 만주(淸나라)가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覇者로 등장했을 때, 그들과 우호 관계를 맺어 국가적인 독립과 동질성 유지를 보장받았다. 1644년, 한반도 북쪽 산악 지대에서 발원한 퉁구스 족(淸나라)이 明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 중국 내지로 진출한 다음, 주변 다른 나라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그때 淸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떠오른 존재는 몽골이었는데, 달라이 라마는 몽골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몽골에서 권위 있는 존재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淸나라 황제의 눈에는 티벳이 도움이 될 만한 동맹 상대국으로 보였다. 그래서 1651년 淸나라 황제 順治帝(世祖)는 '위대한 5대' 달라이 라마와 동맹을 맺고 티벳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었다.

淸나라는 달라이 라마의 티벳 통치권을 인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알고 있던 온 세상의 영적이 지도자로 떠받들었다. 달라이 라마는 淸나라 황제를 만주와 중국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해 주었다. 또 불교의 진리와 수행자와 사원을 보호해 주는 국제적인 수호자로 여겼다. 달라이 라마는 몽골의 불교를 육성시켜 불교 사회로 만들고, 淸나라 황제는 무장을 해제한 불교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는 약속이 티벳과 淸이 맺은 동맹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티벳이 거칠기로 소문난 무력 국가인 몽골을 평화스러운 나라로 만든 것은 주목할 만한 사회 변혁의 한 예이다.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그러나 천 년 동안 티벳 스스로가 경험한 변화에 비하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2. 티벳 : 영적인 문명



승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최근 3세기 동안, 티벳 사람들의 삶의 중심 역할을 했다. 교육, 문학, 철학, 명상 수행, 제의와 축제, 예술의 발달 등이 모두 사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영적인 스승들은 최고의 존경을 받았으며, 자아를 계발하는 영적인 과학인 요가 탄트라 수행을 통해 완전한 붓다가 될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서양의 우주 비행사들과 같은 용기로 내면 세계를 탐색하는 모험가들이었다. 사실 '정신세계 비행사'(psychonaut)라는 말을 만들어 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게 좋을 듯도 싶다. 그들은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가 그렇게도 발견하기를 열망하던 내면 세계의 깊은 미개척지를 향해, 삶과 죽음의 바다를 건너 개인적으로 배를 저어 나갔다.

물질 세계의 정복을 목표로 하는 서구 문명의 마지막 미개척지는 우주 공간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미지의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우주 비행사가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은 내면의 우주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죽음과 중간계, 그리고 환희가 넘치는 無我의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을 가진 채 죽음이라는 해체 과정을 통과하는 능력, 마음을 육체에서 분리하여 마음으로 신비한 몸을 만들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 몸으로 인간의 의식이라는 다른 우주를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티벳에서는 이런 능력을 갖춘 '정신세계 비행사'들이 영웅이다. 달라이 라마와 수천을 헤아리는 환생한 라마(이들은 '뛸꾸'라고 하는데 '붓다의 化身'이라는 뜻이다)들은 모두 티벳의 영웅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과 중간계와 환생 과정을 마스터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과 다른 모든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스스로 환생을 결정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근대 티벳 문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문명이다. 죽는 방법과 죽음에 대한 과학은 티벳 문명과 같은 문명이 아니고서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현대 티벳 문명의 정신적인 특성은 '내적인 현대성'이다. 현대 서구 문명의 특성인 '외적인 현대성'과는 사뭇 대조가 된다. 서구 문명의 현대성은 보통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특성과 대조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개인주의, 개방성, 유연한 주체성, 끊임없는 사색, 이성과 합리성 등이 서구에서 말하는 현대의 특성이다. 이러한 서구의 현대적인 특성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심리적이고 정신적 것까지 포함하여-을 물질적인 量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서구 문명은 '외향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티벳 문명은 모든 것이 영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의식 영역에서는 모든 것 사이에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교적인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영적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물질적인 量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활동하는 에너지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티벳 문명의 특성은 자연히 '내향성'을 띠게 되었다. 서구 사회의 '현대화'라는 말과 티벳 문명의 '현대화'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이렇게 다르다. 서구 사회는 현대화될수록 외부의 물질 세계를 향해 밖으로 나갔고, 티벳은 현대화될수록 마음을 향해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차이는 그 구성원들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국가적인 목표는 물질적으로 보다 더 번영하는 데 있는 반면, 티벳의 국가적인 목표는 영적으로 보다 더 풍요로와 지는 데 있다. 영적인 풍요는 지혜를 얼마나 깊게 갈고 닦느냐, 또 사랑의 힘을 얼마나 널리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티벳의 불교도들은 외부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를 거듭하며 성숙하는' 내면 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으로 얼마나 더 성숙해야 되고, 주위 환경을 얼마나 더 좋게 바꾸어야 하는 지에 대해 한계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나 완전한 지혜와 자비의 존재인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한 이 세상이 아무도 고통받는 이가 없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붓다의 땅(佛國土)으로 바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에 관련된 가르침은 티벳 사람들이 내면 세계를 탐색한 결과로 나온 것들 중에 하나다. 밖으로 치달리고 있는 서구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죽음이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고리타분하게 여긴다. 물질적인 사고 습관은 그들의 마음을 물질에 붙들어 매 놓고, 영혼에 대한 문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애써 죽음 이후의 삶을 무시하면서, 죽음을 단지 뇌파 측정기에 직선이 나타나는 육체적인 현상 정도로 여긴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마음과 존재의 상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인 탐구라는 것은, 육체적인 존재로 살아 있는 동안,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量을 기계의 힘을 빌려 측정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다. 그들은 또 외적인 세계에서 가장 멀고 깊은 곳을 향해 탐험의 닻을 올렸다. 은하계를 향해 끝없이 먼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세포와 미립자와 원자의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끝없이 깊은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면 세계에 관심이 있는 티벳 사람들에게는 물질 세계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깨어 있음, 인과 관계, 상관성, 감각과 인식, 미묘한 이미지의 영역, 빛, 무아경, 脫身, 꿈, 죽음, 초월 등과 같은 내적인 체험에 쏠려 있다. 티벳 사람들은 신비한 내면 세계가 주관적인 체험과 객관적인 사건 일체를 조절하고 통제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분석적인 통찰과 매 순간 집중하여 깨어 있는 명상을 통해 내면 세계를 탐색하고자 한다.

내면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그들은 꿈을 조절하고,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意識下意識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또 미묘한 의식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와 관련된 '나'라고 하는 주관적인 느낌과 자신을 분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죽음과 태어남 사이의 중간계의 체험을 포함하여, 前生의 체험을 기억해 내기 위해 집중력과 기억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3. 티벳의 곤경



물질적인 진보에 대해 거부감이 있긴 했지만, 현대로 들어오면서 티벳은 어느 정도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 티벳 사회는 내적인 발전에 대한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구조로 짜여 있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티벳 자체로서는 큰 문제가 없었고, 내부적인 갈등이나 외부와의 전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아직 완전한 붓다의 땅은 아니었다. 현대적인 정치 지리학 입장에서 보면, 20세기 상황에서 티벳은 매우 상처받기 쉬운 처지가 되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비무장 상태로 오랜 세월을 지냈기 때문에 갑자기 밀려 닥치는 영국과 중국의 군대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지리적으로 티벳 자체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고립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 정세에 너무 어두웠고, 다른 나라들도 티벳을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티벳이 불교 국이라는 정도였다. 티벳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고 나라는 영국과 중국 정도 였는데, 그나마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그 밖의 다른 나라들은 티벳을 약탈 대상 정도로 여겼다. 영국은 티벳 정부와 통상 협정을 맺으면서 티벳을 독립국으로 대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국이 티벳을 장악하려고 할 때 그것을 묵인해 주었다. 결국 영국은 티벳에서 러시아의 세력을 몰아내고 중국 세력이 들어서는 것을 도와준 셈인데, 그 대가로 무역 거점인 홍콩의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은 자기들이 티벳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티벳 사람들은 중국과 동질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중국 사람들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티벳이 마치 자기들 소유인 양 주인 행세를 했다. 그들은 티벳을 '서쪽 창고'(西藏)라고 부르며, 옛날부터 자기들 나라의 일부인 것처럼 선전했다. 1949년 모택동 정부는 티벳을 점령한 후, 자기들의 고국인 티벳 지역에 사는 동족을 외국 사람의 손에서 '해방'시켰다고 세계 앞에 선전했다. (그 당시 티벳에는 유럽 사람 6명이 있었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에게는 중국이 외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해방'되는 것에 저항했다. 모택동의 붉은 군대는 티벳을 완전히 점령했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의 저항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붉은 군대의 잔인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티벳의 소유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때 100만 명이 넘는 티벳 사람이 죽었으며, 불교 문화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티벳을 중국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중국 정부는 티벳의 언어와 불교 문화를 탄압했다. 티벳의 민족적인 동질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파괴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벳 사람을 중국인으로 개조하려는 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자,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 14대 달라이 라마는 백성들을 이끌고 티벳을 탈출하여, 인도 정부의 도움을 받아 망명 정부를 세웠다. 이제 지금 1990년 대에는, 세계 각국이 티벳을 올바로 이해하고, 600만을 헤아리는 티벳 유랑민의 생존권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해 본다.



4. 간추린 불교



불교란 무엇인가? <티벳 死者의 書>는 독자들이 '불교도'라고 가정하고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펼친다. 그러나 '불교도'라는 말이 문자적인 의미의 불교도만 가리킨다면, <티벳 死者의 書>는 그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되리라. 그렇다면 불교도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굳이 번역할 필요도 없다. 또 서구인들이 <티벳 死者의 書>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티벳 死者의 書>는 어떤 특정한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종교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불교를 종교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도 믿음을 토대로 성립된 체계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하여튼 <티벳 死者의 書>는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꼭 불교도가 아니라도 종교적인 입장에서 이 책에 관심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불교는 약 2500년 전에 활동한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생겼지만 인도의 전통적인 종교나 문화를 개혁한 것도 아니고 또 그런 것을 기반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신적인 계시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석가모니는 당시 인도 사람들이 믿고 있던 전능한 창조자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서구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느님과 같은 신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서구인들의 눈에는 그가 (전능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는 초인간적인 존재들을 '신들'이라고 부르면 그들의 존재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로 보이기도 한다.

석가모니 붓다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는 실천적인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의 궁극적인 가르침은 종교적인 믿음이나 신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믿음을 의심해 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잘못된 것임이 판명되는 믿음이나 신앙은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진리를 탐구하는 그의 태도 역시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실재와 본성에 관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선언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의 '붓다'라는 이름이 덧붙여졌다. 그는 왕자로 태어나 왕궁에서 교육받았다. 그러나 출가하여 6년 동안 요가 수행을 했고, 그에 만족하지 못하여 실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영웅적인 수행을 했다.

그는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45년 동안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아 있을 당시 이미 높은 수준의 깨달음에 도달한 제자들이 많이 나타났다. 제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그 가르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점차 거의 모든 아시아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붓다의 가르침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전파되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회적.지적 운동 차원에서 확산되었다는 점도 꼭 기억해야 한다.

붓다는 자신이 전하는 진리나 가르침을 일컫는 말로 '다르마'Dharma라는 산스크리트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다르마'라는 말에는 새로운 의미가 덧붙어 있었다. '다르마'는 '붙잡다', '유지하다', '지탱하다'를 뜻하는 동사 어근 dhr에서 파생된 말로써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과 관련된 여러 가지 중요한 뜻이 있다.

1) 다르마는 특별한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나 현상 또는 특별한 성격 그 자체를 가리킬 수 있다. 2) 다르마는 인간의 행동을 어떤 특정한 형태로 유지시키는 관습이나 의무나 법률을 가리킬 수 있다. 3) 다르마는 특별한 믿음이나 의식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종교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붓다가 발견한 진리의 핵심은 모든 존재의 현재 상태는 궁극적으로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나 자신의 진정한 본성은 고통과 구속과 무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런 깨달음은 일상의 습관적인 고통의 굴레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아무 것도 '붙잡지' 않으며(집착하지 않으며), '매여' 있던 습관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이런 이유로 붓다가 사용한 '다르마'라는 말은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뜻이 되었다.

더 나아가 '다르마'는 붓다의 가르침,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길, 수행의 힘, 붓다의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 그리고 진리가 가져다주는 자유인 니르바나 등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의미의 폭이 확장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으로서의 다르마는 크게 두 가지, 문헌 다르마와 수행 다르마로 나누어진다. 문헌 다르마는 經(붓다 자신이 설한 가르침과 교리).律(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論(진리에 대한 논리적인 탐구) 三藏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행 다르마는 戒(윤리적 실천).定(명상 수행).慧(지혜의 연마) 三學으로 구분된다.



<도표 1. 다르마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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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經.가르침과 교리

          +----- 문헌 다르마 --+-- 律.수행자의 계율

          |                      +-- 論논리적인 탐구

다르마 --+

          |                      +-- 戒.윤리적 실천

          +------수행 다르마 --+-- 定.명상 수행

                                +-- 慧.지혜의 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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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45년 동안 인도 전역에 다르마를 전파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제자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그 공동체를 '샹가'Shangha[僧家]- 이 말은 원래 단순히 공동체를 일컫는 용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남녀 출가자들인 비구와 비구니들로 조직된 수행자 제도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붓다 이전에는 떠돌아다니는 고행자나 수도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붓다는 도시 근교에 붙박이 사원 공동체를 이곳 저곳 설립했다.

사원 공동체는 불교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원 공동체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불교에서는 붓다[佛/스승]와 다르마[法/가르침]와 샹가[僧/공동체]를 3가지 보물[트리라트나/三寶]이라고 한다. 즉 무지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3가지가 가장 귀중하다는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이 3가지 보물에 몸과 마음을 맡긴 사람을 불교도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불교도란 붓다처럼 살고자 애쓰고, 다르마를 깨닫고자 정진하며, 그런 소원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결국 붓다는 역사적으로 세 차원 즉 사회.정치적 차원, 종교.윤리적 차원, 철학.과학적 차원에서 발전한 일종의 교육 운동을 창시한 셈이다.  이 세 차원의 운동은, 만물은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포함하여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붓다 자신의 깨달음을 토대로 전개되었다. 붓다는 인간의 이성을 평가 절하하거나, 비이성적인 것을 정당화하려는 독단, 그리고 권위로 억누르려는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일체의 선입관을 배제한 상태에서, 종교적인 교리에 구애받지 않는 체험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진리를 깨달으면 삶의 모습이 완전히 변하고 초월적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과 삶의 본성에 관한 다양한 이론은 붓다 시대에도 있었다. 정교한 유신론적 논리로 무장한, 실체로서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이론부터 현대의 물질적 허무주의와 아주 흡사한 이론까지 실로 다양한 이론이 있었다. 그런 중에 붓다는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영혼이라는 고정된 실체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거부했으며, 이것은 그의 無我(아나트마anatma)에 대한 가르침을 요체가 되었다.

붓다는 '나'라고 하는 견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무지로 말미암아 삶의 고통이 생긴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나'라고 하는 현상은 결코 부인한 적이 없다. 그는 이 생에서 저 생으로 변화하며 흘러가는 '영혼의 흐름'의 '연속성'을 인정했다. 그는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되는대로 나타나는 물질적인 부대 현상 정도로 여기는 동시대의 허무주의를 단호히 배격했다. 그는 (절대적인 실체로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상처받기 쉽고, 스스로의 삶에 책임이 있으며,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적인 현상으로서의 자아'의 존재를 인정했다. 자아의 상대성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각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불교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움과 동시에 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세상 전체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만들었다.

붓다 이후 약 400년 동안 인도에 널리 퍼진, 깨달음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대승불교 경전에는 붓다가 3가지 몸[三身]을 가진 우주적인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붓다의 세 몸 중에서 첫째는 붓다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하는 진리의 몸[法身]이다. 진리의 몸은 궁극적인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은 사람은 이 진리의 몸 안에서 온 우주와 자신이 하나임을 체험한다. 다음에는 붓다의 지극한 자비를 상징하는 두 몸이 있다.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몸[報身]과 뭇 중생을 그들 본래의 모습인 자유로 인도하는 나투는 몸[化身]이 그것이다.

깨달은 몸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쁨을 누리는, 육체 뒤에 있는 일종의 신비한 정신적인 몸이다. 이 몸은 무한하며, 붓다는 이 몸을 통해 만물 속에 기쁨을 전달한다. 나투는 몸은 붓다의 무한한 기쁨의 몸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무지한 중생들을 돕기 위해, 기쁨의 몸이 육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나는 몸이다. 붓다는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가 있다. 역사적인 인물인 석가모니 붓다는 바로 이러한 붓다의 나투는 몸이었다. 하지만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나툰 붓다는, 뭇 존재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모든 붓다에게는 진리의 몸, 깨달은 몸, 나투는 몸이라는 세 몸이 있다. 붓다의 몸에 관한 이런 분류는, 티벳 사람들이 붓다나 성자의 환생이라고 말하는 '뛸꾸'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붓다는 우주의 본질을 깨닫고 온 세상을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려면 물질과 마음의 본성을 철저하게 탐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제자들에게 합리적인 이성의 힘과 내적인 반성과 정확한 판단, 그리고 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은 감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예민한 집중력을 통해 감각과 마음의 작용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붓다는 후대에 큰 나무로 자라난 마음을 탐구하는 과학(아디야트마비드야adhyatmavidya)을 창시했다. 이것을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방법으로 마음을 밝히는 훈련으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은 이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자신의 긍정적인 요소를 깨달음과 동시에 부정적인 요소들로부터 해방된다. 붓다는 이후 오랜 세월 인도와 아시아 각지에서 번성하게 될, 남녀 출가 수행자 단체를 조직했다. 이들 단체들은 이슬람 세력과 세계적인 세속화 바람이 불어닥치기 전에는 아시아 거의 전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들 중에는 죽음과 중간계와 환생 과정을 탐구하는 단체와 수행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의 누적된 연구 결과는 방대한 문헌으로 남게 되었다. 죽음에 관한 이 과학적인 문헌들은 세계 문명의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티벳 死者의 書>도 그런 문헌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5. 티벳 사람들의 죽음을 보는 눈



티벳 사람들은 죽음과 중간계를 신비스럽게 여기지도 않고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중간계의 여행을 안내하는 <티벳 死者의 書>는 티벳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보는지, 또 전생과 현생과 내생의 연속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태양계의 구조나 계절의 변화를 종교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처럼, 수없이 여러 번 태어난다는 견해가 결코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다. 티벳 사람들은 생명체의 연속적인 삶, 즉 일정한 패턴을 따라 진행되는 죽음과 중간계와 환생을 당연한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명료한 의식을 가진 채로 중간계를 탐험하고 돌아온 깨달은 성자들이 전하는 중간계에서의 체험담을 믿는다.

티벳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달에 다녀 온 우주 비행사들이 달이 어떻더라고 말하는 것을 믿는 것처럼, 그들 정신세계 비행사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티벳 사람들은 또한 정해진 방법에 따라 명상함으로써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낼 수 있다고 믿는다. 티벳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이런 불교적인 관점에 따라 영위해 나간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배우고, 그리고 윤리적인 행위와 올바른 마음 씀씀이와 비판적인 통찰력을 통해 죽음과 죽음 이후의 생을 준비하는 데 일생을 보낸다.

티벳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은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다른 부분도 있다. 그들도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죽음을 인생의 종말에 찾아오는 비극으로 본다. 또한 사고로 비명횡사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심지어는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것임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더 살아 보려고 한다. 이런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면, 죽음을 고통 없는 망각으로 여기는 서구 유물론자나 현실주의자들 보다 티벳 사람들이 오히려 죽음을 더 두려워하는 면이 있다. 그들은 무감각한 망각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죽음을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 생에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나쁜 습관을 가지고 그릇된 행동을 일삼은 사람은 죽음의 문을 통과한 다음 이 생에서 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몰래 숨어서 기다리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심술궂은 존재로 본다. 티벳 사람들은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신 야마에 대한 관념을 인도에서 물려받았다. 야마는 들소 머리에 양 손에는 해골 바가지가 달린 가시돋힌 곤봉과 올가미를 들고 검푸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야마는 발기한 좆을 드러내고,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들소 뒤에 우뚝 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소름끼치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배우자 차문다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차문다는 야마의 에너지를 여성으로 인격화시킨 상징이다. 야마 밑에는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졸개들이 있다. 그들 죽음의 사자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죽은 자의 영혼을 야마 앞으로 끌어온다. 죽음의 사자가 부르면 아무도 거역하지 못한다. 지하 세계로 끌려가 문도 없고 창문도 없는 쇠감방에 갇힌다.

야마는 쇠감방에 갇힌 죽은 자의 선악을 심판한 다음, 선한 행위가 월등히 많았으면 하늘 나라로 보내고 악한 행위가 많았으면 동물 세계나 지옥으로 보낸다. 그러나 동정심과 아량이 있고, 지적인 능력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가능성 있는 영혼이라면 인간 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한다. 영적이 수행에는 하늘 나라 보다는 인간 세계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티벳 사람들은 야마를 대단히 두려워하며, 붓다와 보살들이 자신들을 야마의 손에서 건져 줄 것을 기대한다. 티벳 사람들은 야마가 붓다에게 굴복하는 과정을 가면 무도회를 통해 묘사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때 울긋불긋한 의상을 입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가면을 쓴 승려가 춤을 추며 야마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러면 붓다의 화신인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 만주스리(文殊菩薩)나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가 나타나 야마를 굴복시킨다. 특히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는 위대한 성자이며 티벳의 영적인 구원자인, 역사적인 실존 인물 파드마 삼바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죽음을 인격화시킨 야마의 모습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하지만, 실제로 무서운 것은 야마가 아니다. 악한 사람이 받을 심판과 그들이 처할 운명이 무서운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명이 무한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생명은 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무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믿는다. 인간의 생명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인간은 항상 어떤 상태이든 관계의 영역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처해 있는 관계의 영역 속에서 내적인 자유를 성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에서 비롯되는 속박의 굴레에 끝없이 휘말릴 수밖에 없으며, 반복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영원히 피하지 못한다.

인간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상태와 기쁨이 넘치는 상태의 중간에 놓여 있는 존재다. 인간은 베푸는 행위, 도덕적인 행위, 그리고 관대함 등의 미덕을 쌓음으로써, 또 비판적인 지혜를 계발하고 통찰력을 기르는 명상 수행을 통해 지적인 능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태어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인간은 엄격하게 프로그램된 본능적인 반사 행위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존재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주어져 있다. 인간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무한한 행복을 누림과 동시에 다른 생명체들을 도와 그들을 고통에서 건지는 자비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 죽는 것, 즉 인간 상태로 존재하는 동안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잃어버리고 원하지 않는 비참한 상황에 수없이 반복하여 태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 중에 비극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깨달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길을 따르지 않고 살다 죽은 사람의 상태는, 죽으면 완전히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죽자 마자 하늘 나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그런 사람은 지옥이나 연옥에 떨어질지 모르며, 그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없는 고통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티벳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가는 삶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즉 다음 생에 처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도록 한다. 티벳 사람들의 진한 종교성과 영성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원 지대의 눈 덮인 산이 아니라 바로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보다 깊은 영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티벳 사람들은 죽음을 오히려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힘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죽음을 악하고 무자비한 것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착하게 살도록 하는 힘, 즉 바람직한 태도와 선한 행동을 강화시키는 힘으로 본다. 또한 죽음 자체를 삶과 동떨어진 별도의 절대적인 실재로 여기지도 않는다. 죽음조차도 이렇게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티벳 사람들의 정신적인 태도는 항상 현존하고 있는 자유, 즉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근거로 존재하고 있는 자유와 관련하여 죽음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티벳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항상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삶의 상황, 그리고 깨어 있는 상태의 감각과 그 감각이 인지하는 대상들이 견고한 실재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 내가 하는 행위, 나의 느낌,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서 변하지 않는 본성[自性]을 갖고 있는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은 언제든지 무로 돌아갈 수 있는 잠재적인 무이다. 만약 지금 죽는다면 그 모든 것이 당장 해체되고, 기억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손에서 떠난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떠나 텅 빈 마비 상태가 될 것이다.

죽음의 가능성이 현존하고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상상을 뛰어 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본성은 언제나 자유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모든 혼란은 이 세상을 고정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실체로 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깊은 자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보통 습관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완전히 그의 자유 의사에 따라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이런 고차원적인 이해는 자신을 '비우고 죽이는 지혜'를 인격화시킨 무시무시한 죽음의 신 야마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죽음의 신 야마에 대한 명상을 통해 만물의 '비어-있음'[空性]을 철저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티벳 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티벳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는 기쁨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들은 고정된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살며, 무슨 일에서든지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 생을 붓다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한 수행에 바친다. 결코 물질을 추구하거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세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자신의 잠재적인 진화 가능성을 꽃 피우기 위해, 내면의 빛에 따르는 지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리하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티벳 문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죽음이 늘 현존하고 있다는 생생한 깨달음과,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에서 분출된 현상이다.







□ 제 2 장 □

죽음에 대한 티벳의 과학적인 견해



1.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과학 차원에 속한 질문이다. 서구 과학은 심장의 박동이 멎고 뇌파 측정기의 그래프가 직선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유물론자들은 뇌가 활동하고 있는 동안 '나'라고 하는 개체적인 의식이 존재하며, 뇌의 활동이 멈추면 의식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으면 의식이 소멸된다는 견해는 과학적인 탐구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럴 것이라는 가정일 뿐이다. 실제로는 한동안 뇌파가 정지된 상태로 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은 한결같이 뇌파가 정지된 상태로 있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체험을 했노라고 증언한다.

현대적인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죽음을 생명의 활동이 완전히 소멸된 영원한 무와 망각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죽음을 잠, 어둠, 무의식 등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앞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괴로움에 지친 사람은 고통을 의식하지 못하는 영원한 마취 상태로서의 죽음을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이 확실히 그러한 것인지 과학적으로 탐구해 보아야 한다. 사실 내면[마음]의 과학은 무에 대한 분석에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무는 말 그대로 무일 뿐이다. '무'라는 관념은 무가 아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무인데, 관념은 나름대로 의미의 범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는 범위가 없다. 또한 안도 없고 밖도 없다. 따라서 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그 안에 무엇을 넣을 수도 없다. 무는 무이기 때문에 없애 버릴 수 없으며, 어떤 힘이나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무는 그 무엇도 아니며, 어떤 상태나 영역도 아니다. 무는 두려워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절대적인 무일 뿐이다.

무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의 반대편에 있는, 만물의 궁극적인 종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를 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을 갖고 있다. 무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관념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게 환상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를 명백히 보여 준다. 무가 '있다[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이것', '저것', '그것' 또는 '이러한 상태', '저러한 상태', '그러한 상태'라고 대명사를 써서 지칭하는 것도 잘못이다. 무는 무이기 때문에 상상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를 일종의 종착역 즉 인생이 도달하는 마지막 상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뇌파 그래프가 직선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무라고 상상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모든 감각 활동이 정지한 일종의 마비 상태를 무라고 보는 것이나, 의식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영역으로 보는 것 또한 논리적으로 앞 뒤가 안 맞는다. 무는 겉도 없고 속도 없기 때문에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과 같은 어떤 상태를 무라고 상상하는 것은 스스로 위안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의 상태가 깊은 잠과 같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깊이 잠들면 감각, 생각, 걱정, 그리고 의식 마져 사라진다. 우리는 어떤 근원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며 잠에 '빠진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까지는 의식이 있지만, 다시 꿈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을 가지고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의식이 없다. 꿈은 기억할 수도 있고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의식은 말 그대로 '무'의식이기 때문에 체험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의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는 동안 의식이 없는[무의식] 상태에서 편히 쉬었다는 느낌은 무의식의 체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잠들기 직전과 깨어나는 순간의 느낌에서 오는 것이다.

잠은 휴식, 평화, 고요, 원기 회복 등과 관련되어 있다. 정신적 혹은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은 심한 고통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잠이 부족하면 육체의 건강을 잃는다. 잠을 자는 것과 뇌파가 뛰지 않는 것은 비슷한 것이 아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두뇌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깨어 있을 때보다 꿈을 꿀 때 오히려 두뇌가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물질적 관점에서 보면 잠과 죽음은 완전히 다르다. 죽음을 무의 세계로 들어가는 入場으로 여기는 것은 죽음의 실상에서 눈을 돌리고자 하는 자위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을 잠과 비슷한 그 어떤 상태로 여기는 것은 물질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추측에 불과하다. 이런 견해는 마치 세상과 결별해야만 자유가 있다고 보고 그런 상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소승 불교, 힌두교 신비주의, 도교, 그리고 서구 唯一神敎의 이원론적인 해탈관 내지는 구원론과 흡사하다. 그들은 걱정과 괴로움과 문제 투성이로 뒤얽힌 세상을 떠나, 평화와 안식으로 충만한 잠과 비슷한 축복의 상태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적인 이상인 니르바나는 고통과 슬픔의 세계와 완전히 결별한 영원한 축복의 상태, 즉 무의식적인 잠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유물론자들이 영적인 구원이나 종교적인 해탈을 비웃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들은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지 않고도, 배우거나 수행하지 않아도, 또 깨달음이 없어도 매일 밤 저절로 그런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고생을 하느냐고 조롱한다. 세상 걱정을 모두 여읜 깊은 잠과 같은 상태가 해탈이라면, 유물론자들은 수많은 밤을 지나면서 이미 해탈하는 방법에 숙달되어 있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는 잠과 같은 무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그들의 견해는 사실에 부합되는 것인가? 그렇게 믿을 만한 증거가 있는가? 무의 세계를 경험한 다음 그 세계는 이렇더라고 보고한 사람은 없다. 아무도 그 세계를 본 사람이 없고, 그 세계에 대한 기록도 없으며, 자신이 죽은 사람의 주관적인 의식을 가지고 죽음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도 없다. 육체적으로는, 죽음 속으로 들어가 그 상태를 탐색하거나 규명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티끌 하나라도 무로 돌아가는 것을 관찰한 바가 없다. 그들은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을 들먹인다. 그렇다면 의식도 에너지일진대 어째서 의식 에너지만이 그 법칙에서 예외가 된다는 말인가? 유물론자들이 일종의 에너지 연속체인 의식이 무로 돌아간다고 그렇게도 강력하게 믿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에게는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입증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믿음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막연한 소원을 등에 없고, 머리로 짜낸 허황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는 그들의 견해는,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털 끝만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되뇌이는 과정을 거치면서 강화된 공허한 교리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만물의 실상을 알고 싶어하는 종교적인 충동이 있다. 그래서 죽으면 무로 돌아간다고 하면 당연히 무는 어떤 상태일까 하는 의심이 생긴다. 유물론자들은 인간 본연의 이런 종교적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 증거도 없고 경험도 해 보지 못한 것을 아는 체한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무가 예상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으나, 쓴 약을 꿀꺽 삼키듯이 이것 저것 따지기 전에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어떤 상태라고 주장하는 무모한 사람들이다.

유물론적 과학자들이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교리적으로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활동한다는 것이 자기들의 믿음에 의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그런 증거들에서 눈을 돌린다. 어떠한 의문도 허용하지 않는 종교적인 교조주의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증거도 없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빈약한 논리의 믿음을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한다.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이 존재하며, 의식과 감각이 살아 있는 삶이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증거는 많다. 첫째, 만물은 변화를 통해 형태는 바뀌지만 그 존재의 지속성은 끊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도 의식은 소멸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죽었다 살아 난 사람들이 전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가 많다.

의학적으로 분명히 죽었다 살아 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어린 아이가 전생에 있었던 일과 자기가 처해 있던 환경을 기억하는 것처럼, 죽음의 세계에서 경험한 일을 기억한다. 신뢰할 만한 학자들이 이런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비교해 본 결과 믿을 만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죽음 이후의 체험에 대한 다양한 증언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한 사람도 있고, 문화적인 성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죽음의 형태에 대한 안내서를 펴낸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중요한 사실은, 문명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일지라도 죽음 이후에 직면하게 될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無]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즐거운 것도 아니다. 단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깨어 있는 상태의 혼란과 고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안한 상태일 수는 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이다. 사실 고통은 당연히 두려워해야 할 그 무엇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죽음이 무이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시체로 변하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은 앞으로 닥쳐올 고통스러운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앞으로 닥쳐올 고통스러운 상황을 피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궁리한다. 오늘 밤 깊은 잠에 빠진다고 해서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낮 동안에 최선을 다해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준비를 잘하면 잘하면 잘한 만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잠에 빠진다고 해도, 자고 나면 저절로 내일이 오는 것처럼 의식의 다음 상황이 자동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동안 그 새로운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준비를 잘하면 잘한 만큼 죽음 이후의 상태가 편안해지리라.

아무리 극단적인 유물론자일지라도 다음과 같은 파스칼의 유명한 '도박의 원리'에는 귀를 기울여 봄직하다. 죽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면, 살면서 준비하고 쌓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도 존재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악한 행위만 일삼으며 준비를 게을리 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오래도록 후회하게 될 것이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믿음대로 죽음 이후에 무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든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존재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철저히 준비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전개되면 준비한 만큼 큰 행복을 누릴 것이고,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멸되어 버린다면 무엇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존재조차도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존재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준비를 한 사람은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둘 것이고, 영원성을 부정하고 세상 일과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한 사람은 생명을 낭비한 것을 깊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이라는 판돈을 어느 쪽에 거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상대적인 삶의 상황을 대하는 태도가 신중하든지 아니면 모험적이든지,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 상호 연관성은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나쁜 쪽이거나 좋은 쪽이거나 발전할 가능성 역시 무한하다. 자신이 무한한 상대적인 연속성에 얽혀 있는 존재임을 이해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른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대적인 상호 연관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확실히 이해하는 사람은 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자신을 포함한 주변 상황을 개선하는 데 쓰고자 할 것이다.

합리적인 증거도 없고, 그럴듯한 추론에 불과한 종교적인 성격의 믿음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끝이 없다. 왜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죽은 다음에 평안한 마비 상태가 올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죽음을 모든 상황과 체험에서 단절된 영원한 고립이라고 보는가? 상대적인 관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모든 상대성을 초월한 그런 절대적인 소멸 상태를 상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파스칼의 도박의 원리를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전능한 존재가 있어서 어떤 행동을 한 사람이든지 모두 구원해 준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누구나 구원받을 것이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한 사람이라고 해도 괜히 쓸데없는 고생을 했다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무슨 불평이나 후회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는 그런 전능한 존재는 없고, 우리가 준비한 만큼 우리를 도와주는 신적인 존재가 있다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오래도록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건전한 믿음이라고 해서 비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올바른 신앙은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맹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신앙은 과학적인 탐구의 뒷받침을 받아 그 힘이 강화되어야 하고, 문자의 얽매임에서 풀려나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건전하고 유용한 신앙이라면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학적인 탐구자들은 자기 보다 앞선 선배들이 시도한 행위와 그들이 남긴 방대한 문헌에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죽음에 관한 한 아마 인도-티벳의 전통 속에 남겨진 문헌이 가장 방대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상호 연관 속에서 무한한 우주 속에 퍼져 있다. 유물론적 진화론은 이런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목적 없이 일어나는 자연 도태설과 돌연변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은 진화가 시작되는 어떤 한정된 출발점과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 출발점과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한 언급이 없다. 그들은 물질 세계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며, 때에 따라서 돌연변이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인 견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 역시 육체와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발전하고 때에 따라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지 않겠는가?

'까르마[業]의 법칙'으로 알려진 불교의 정신.생물학적인 진화론은 다윈주의자들의 견해와 상당히 비슷하다. 까르마 이론은 모든 존재가 그물에 꿴 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의 형태를 계속 바꾸어 나간다고 말한다. 까르마 이론은 인간은 과거에 원숭이였으며, 모든 동물을 단세포 생물이었다는 다윈주의자들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까르마 이론이 다윈주의자들의 견해와 다른 점은, 까르마 이론은 모든 존재는 윤회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삶을 취하는 돌연변이를 한다고 말하는 데 있다.

윤회 과정에서는 미묘한 차원의 의식이 생명의 다음 형태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정신 수준에 따라 생물학적으로 같은 種 안에서 발전하거나 돌연변이 할 수도 있고, 다른 種으로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까르마적인 진화 과정에서는 지금 보다 고등한 생명체로 태어날 수도 있고 열등한 생명체로 태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일정한 법칙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따라 진화가 계속된다는 것을 일단 의식한 존재는, 자신의 생각과 행위의 선택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의 물줄기를 돌려놓을 수 있다. 물론 까르마 이론과 진화론적 설명 사이에는 명백하게 다른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마 이론이 어떤 존재가 어떻게 그런 형태의 존재가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진화론적 설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까르마'를 '진화' 또는 '진화적 행위'라고 번역하고자 한다.

까르마란 변화와 발전의 원인이 되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가 쓰는 진화라는 말과 그 의미가 비슷하다. 그러므로 굳이 '까르마'라는 인도 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번역자들 중에는 '까르마'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독특한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적당한 번역어가 없다는 생각에서 '까르마'라고 그대로 音譯해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동양 사상에 깊이 심취한 서구인들 중에는 '까르마'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운명 같은 것으로 여기고, 번역하지 않고 고지식하게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까르마는 비인격적이고 자연적으로 전개되는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뜻할 뿐, 운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다. 까르마는 삶과 죽음 또는 중간계를 포함하여 모든 순간에 원인의 힘으로 작용하는 일종의 총체적인 틀[原形]이다. 이 틀은 연속되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 쌓은 이전 행위에서 비롯된다. 이전 행위에서 비롯된 까르마라는 복합체는 현재의 몸과 마음과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바꾸어 말하면, 현재의 행위와 말과 마음이 미래의 삶의 형태와 질을 결정하는 새로운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이 되는 복합체인 까르마를 '진화의 추진력'(evolutionary momentum)이라고 불러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티벳에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가르침이 있다. "그대의 전생이 어떠했는지 알고 싶으면 그대의 현재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그대의 내생이 어떠할지 알고 싶으면 그대의 지금 마음을 살펴 보라," 이 말 속에는 우리의 현재 상태는 과거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길고 긴 진화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우리의 미래 상태는 지금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진화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좋은 쪽으로 돌리기에는 죽음에서 새로운 탄생으로 전이해 가는 중간계 기간이 최적의 기회다. 그 기간 동안 진화의 추진력은 일시적으로 유동적이 된다. 그러므로 중간계라는 결정적인 고비를 넘기면서 수직으로 상승할 수도 있고 하강할 수도 있다. 티벳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티벳 死者의 書>를 운명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돌려놓는 안내서로 여기며, 보물처럼 귀하게 여긴다.



2. 여섯 차원의 존재 영역[六道]



불교는 생명의 존재 차원을 여섯으로 나눈다. 그 중에서 지옥계(地獄界)는 최고로 부정적인 몸서리쳐지는 상황을 경험하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 대한 생각은 서양인과 동양인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불교도들은 뜨거운 지옥 8곳(8熱地獄), 차가운 지옥 8곳(8寒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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