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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경전

– 불교성전

티벳 死者의 書--2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2)

작성자
보리행
작성일
2005-07-15 10:06
조회
13108




      □ 제 2 부 □



      중간계

      여행 안내서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책



중간계 여행 안내서인 <티벳 사자의 서>는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의 일부이다.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의 원래 제목은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다.

<명상을 통한 자유>는 8세기경

파드마 삼바바가 기록하여 티벳에 감추어 놓았던

비장 문헌이다.



이 문헌은

웃디아 왕국에서 티벳으로 건너온

위대한 성자 파드마 삼바바가 불러 주는 대로

그의 수행의 짝 예셰 초걀이

받아 적은 것이다.

이 문헌은

유명한 비장 문헌 발굴자인 까르마 링빠가

감뽀 다르 산에서 발견하여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 제 5 장 □



  중간계와 관련된 기도



  여기에 실린 5가지 기도와 진언은 <티벳 死者의 書> 전체의 등뼈 역할을 한다. 중간계 여행 과정의 핵심 프로그램인 이 기도문은, 외운 다음 관련되는 국면이 전개될 때 반복하도록 되어 있는 일종의 진언이다.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는 <티벳 死者의 書>가 제시하고 있는 변형을 위한 상상 명상을 돕는다. 수행자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인 스승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그와 결합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 4가지는 <티벳 死者의 書>의 가르침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도문이다.<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는 3가지 보물 즉 붓다와 진리와 수행자 공동체에 호소하는 산문체 기도문이다. 죽음의 길에 들어서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어서 중간계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구원해 달라는 내용이다.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중간계를 여행하는 동안 부정적인 습관[5毒]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을 때, 부정적인 습관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따르도록 이끌어 달라는 내용이다.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깨달은 존재들의 보호와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강조점은 절대 자유의 경지보다는 미래에 전개될 삶을 보호하고 이끌어 달라는데 있다.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탄생 중간계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때, 좀 더 나은 환생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는 각 중간계에서의 수행이 완성되어, 삶의 사이클 전체가 깨달음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지금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이미 저승 중간계에 들어간 사람을 위해서라면, <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와 <붓다와 보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읽어 주는 것이 좋다. 나머지 기도는 중간계 각 단계의 가르침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 읽어 주면 된다.본문에서 크고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사람이나 중간계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어야 하는 부분이다. 보통 굵기의 큰 글씨체로 된 부분은 <티벳 死者의 書> 자체에 있는 가르침과 해설이며, 작은 글씨로 인쇄된 부분은 역자의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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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세 몸인 스승에 대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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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가지 독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도문은,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 맨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매우 간략하고 문체가 아름다운 이 기도는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을 사용하기 위한 환경을 설정해 주고 있다. 궁극적인 실재를 몸으로 나타내고 있는 스승을 신뢰하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승은 입문 의식을 통해 그대가 선택한 붓다의 비밀스러운 영역으로 그대를 이끌어 들인다. 그대를 인도하는 영적인 스승이 그대 속으로 들어오기를 청하고, 그의 신성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며 그와 하나로 결합하는 수행을 ‘스승 요가’라고 한다. 상상 속에서 스승과 결합하면, 그대와 스승은 더 이상 둘이 아니다. 그대가 스승이 되고, 그대가 붓다가 된다. 붓다가 되고 스승이 된 그대는 스승과 붓다에게서 받은 은총을 세상으로 되돌려 보낸다. 현실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스승에게 입문하지 않는 사람은 <티벳 死者의 書>의 저자인 파드마 삼바바를 스승으로 여기고 이 수행을 할 수 있다.

  완전한 붓다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붓다의 세 몸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 붓다에게는 궁극적인 진리의 몸, 기쁨이 넘치는 깨달은 몸, 중생을 위해 나투는 몸이 하나로 존재한다[三位一體]. 스승의 모습 속에 붓다의 이 세 몸이 현존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승이 그대 속에 현존할 때 느끼는 은총에 대한 감각을 키운다. 신성한 보좌에 앉아, 모든 붓다와 보살과 수호신과 깨달은 존재들에 둘러 싸여 있는 스승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해야 한다. 그대가 스승으로 섬기는 사람이 어떤 종교의 사제이든지 아니면 성자이든지, 또는 박사님이거나 샤먼이거나 간에 같은 방식으로 시각화 상상을 한다.

  탐욕과 분노와 망상[貪·瞋·癡], 이 3가지 독은 깨달음을 방해하고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3독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래 상태의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곧 ‘위대한 완성’[마하무드라]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는 즉각적인 변형이다.



옴-아브 카아 아! OM-AV KAA AAH!



OM은 신비한 창조력이 있는 만트라이다. 이 만트라의 소리는 우주 전체에 울려 퍼진다. 따라서 초월적인 존재 또는 능력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AV KAA AAH는 많이 사용되는 만트라는 아니다. AV는 사물의 견고한 실체가 없음 즉 ‘비어-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비의 창조적인 활동력에 대한 순응을 뜻한다. KAA에서 K는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의 첫 번째 자음으로서, 근원적인 자리를 상징한다. A는 우주적인 창조력의 상징이다. 따라서 KAA는 근원에서 울려 퍼지는 우주적인 창조력을 뜻한다. AAH는 붓다의 깨달은 몸과 말을 상징하는 만트라이다.



우주 속에 충만한 완전한 진리의 궁전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진리의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무지와 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진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완전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스스로 존재하는 근원적인 지혜를 밝혀 주소서!



여기서는 궁극적인 실재[붓다의 진리의 몸]와 하나 된 스승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스승과 그대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궁극적인 실재인 스승과 하나 되었음을 느끼는 순간, 그대 또한 궁극적인 실재가 되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은총의 물결을 체험한다. 그대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무지와 망상이라는 정신의 부정적인 습관이 저절로 궁극적인 실재 속으로 녹아 들어가 변형되는 것을 느낀다. 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그대는 스승의 심장 의식 센터에 푸른색 사파이어로 쓰인 HUM 만트라를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청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는 자유롭게 하는 근원적인 지혜로 충만해진다. 이 수행은 제 3단계 입문[智慧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단계의 수행을 통해 죽음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투명한 직관의 빛과 붓다의 진리의 몸을 체험할 수 있다.



순수한 지혜의 기쁨이 충만한 빛의 궁전에서,

죽음을 모르는 깨달은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탐욕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깨달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을 채워 주소서!



여기서는 기쁨으로 충만한 스승의 모습[붓다의 깨달은 몸]에 초점을 맞추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스승의 현존을 느끼며 그와 결합한다. 결합하는 즉시 똑같은 희열과 기쁨이 그대 속에 흘러 넘친다. 억지로 기쁨을 만들어 내려던 탐욕과 정욕이 녹아 버린다. 이제 행복을 밖에서 찾지 않는다. 그대는 스승의 목 의식 센터에 붉은 색 루비로 쓰인 AAH 만트라를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목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그대의 목 의식 센터는 내적인 지혜의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이 수행은 완성 단계 수행[圓滿行]이 시작되는 제 2단계 입문[秘密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 단계의 수행을 통해 저승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신비한 에너지 몸과 붓다의 깨달은 몸을 체험할 수 있다.



흠없이 완전한 연꽃 궁전에서,

스스로 나타나신 신성한 나투는 몸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되는 증오심이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나투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마음을 밝히는 투명한 빛을 비추어 주소서!



여기서는 뭇 중생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 자비를 베푸는 스승의 모습[나투는 몸]에 초점을 맞추고, 그와 한 몸이 되는 것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그대 자신이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욕망과 정욕이 완전히 사라진 연꽃 계열 붓다의 일원이 되었음을 느낀다. 스승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빛나는 백색 다이아몬드 만트라 OM을 생생하게 시각화한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눈부신 백색 광선이 그대에게 흘러 들어와 그대의 정수리 의식 센터를 가득 채운다. 이 수행은 제 1단계 입문[花甁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여기서 창조 단계 수행[生起行]을 할 수 있는 힘을 전수 받으며, 이 수행을 통해 자신의 몸과 붓다의 나투는 몸이 하나 된 상태를 체험한다.



내면을 관통하는 투명한 빛의 궁전에서,

만물에 고루 축복을 베푸는 세 몸이신 스승께

한없는 경배와 기도를 드리나이다.

나와 너의 분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도,

지금 이대로 자유롭게 해 주소서.

당신의 세 몸에서 흘러나오는 지극한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게 하소서!

근원적이 지혜의 세 몸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여기서는 그대와 스승과 붓다의 세 몸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그대의 내면이 완전한 붓다의 땅으로 바뀌고,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붓다의 몸과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만트라 OM AH HUM의 진동과 함께, 스승의 세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광선의 축복을 받는다. 그대의 세 의식 센터는 흰 색, 붉은 색, 푸른 색 광선으로 충만해진다. 이로써 그대와 스승은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이 된다. 이 수행은 제 4단계 입문[大印入門]과 더불어 시작한다. 여기서 최고의 완성 단계[마하무드라]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전수 받으며, 이 수행을 통해 죽음과 중간계와 삶[환생]이 하나의 실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육체와 말과 마음도 하나이며, 붓다의 세 몸도 하나[三位一體]라는 사실을 체험한다.



오, 무지와 망상의 어둠 속에서

윤회하며 고통 당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무한한 진리의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진리의 몸을 이룰지어다!



그대는 스승과 결합함으로써 스승이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은총이나 축복을 구할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의 눈을 통해 뭇 생명들로 가득한 세상을 응시한다. 그들이 그대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그대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투명하고 무한한 ‘비어-있음’ 속에서는 모두가 한 몸으로 얽혀 있다.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HUM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푸른 색 사파이어 광선이, 부드럽게 그들의 심장 의식 센터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궁극적인 실재[붓다의 진리의 몸]와 하나 되는 모습을 본다. 이제는 행복감으로 충만한 그들의 심장 의식 센터에서 발산되는 푸른 색 광선이 그대의 심장 의식 센터를 비춘다. 축복의 광선은 이렇게 오고 가면서 점점 더 강렬해진다.



오, 정욕과 집착의 그릇된 길에서

윤회하며 방황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기쁨이 넘치는 깨달은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깨달은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다시 한 번 마음의 눈으로, 그대의 도움을 청하고 있는 뭇 생명들로 가득한 세상을 응시한다. 궁극적인 실재의 무한한 투명성과 하나 되어, 지복감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깨달은 몸]에 주목한다. 그대의 목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AAH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이, 그들의 목 의식 센터로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들은 점점 더 깊은 행복에 젖어 든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발산되는 사랑과 기쁨의 루비 광선이 그대의 목 의식 센터를 비춘다. 기쁨의 광선은 이렇게 오고 가면서 점점 더 강렬해진다.



오, 증오심을 일으키는 이원적인 분별심 속에서

윤회하며 방황하는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자유로이 나투는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나투는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마음의 눈을 통해, 기쁨에 젖어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중생들을 본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쁨의 물결이 아직 깨닫지 못한 다른 중생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모습에 주목한다. 그대의 정수리 의식 센터에서 만트라 OM의 진동과 함께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이, 그들의 정수리 의식 센터로 부드럽게 흘러들어 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그들의 기쁨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다른 생명체들과 무한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몸[나투는 몸]으로 변형되는 모습을 본다. 다이아몬드 광선을 받은 존재들이 나투는 몸으로 변형된다. 무한한 중생들이 그렇게 변형된다. 나투는 몸으로 변형된 중생들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다른 생명들을 기쁨과 자유의 길로 인도한다. 그들이 발산하는 행복과 평화의 다이아몬드 광선이 그대를 되비춘다. 그 빛을 받은 그대의 다이아몬드 광선은 이전 보다 더욱 밝게 빛난다.



오, 습관과 대상의 올가미에 걸려

아직 붓다를 이루지 못한 중생들이여!

그대들의 마음이 곧

붓다의 나눌 수 없는 세 몸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붓다의 세 몸을 이룰지어다!



스승이 된 그대는 다시 한 번 마음의 눈을 통해, 지복감 속에서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중생들을 응시한다. 궁극적인 실재 속에서, 그대를 포함한 다른 모든 중생들과 하나 되었음을 느끼며 기쁨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대가 그들에게 비춘 축복의 광선은 더욱 밝은 빛이 되어 그대에게 돌아온다. 그대는 그 축복의 광선이 무한히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푸른 색 사파이어, 붉은 색 루비, 백색 다이아몬드의 빛이 결합된 빛의 소용돌이가 우주 전체를 감싸고돈다. 우주 전체가 깨달은 존재의 육체와 말과 마음을 상징하는 OM AH HUM의 진동으로 가득 찬다. 이제 시작도 끝도 없는 근원적인 실재[진리의 몸]에서 발산되는 푸른 색 사파이어 광선, 모든 존재와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몸[깨달은 몸]에서 발산되는 붉은 색 루비 광선, 그리고 뭇 중생들과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몸[나투는 몸]에서 발산되는 백색 다이아몬드 광선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었다.

붓다의 영역에서 분리된 무엇인가가, 또는 누군가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착각이다. 에고에 대한 집착은 이런 착각에서 비롯된다. 착각에서 비롯되는 분리 의식은 기쁨과 지혜로 충만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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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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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4개의 기도 중에 첫 번째 기도문이다. 자신의 죽음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 또는 명상 수행을 통해 죽음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사용한다.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을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는 첫 구절 OM은 온 세상의 모든 붓다와 보살들이 나투어 현존하기를 바라는 만트라이다.



OM



자신의 죽음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 사람은 붓다와 보살들의 도움을 청하는 이 기도를 드려라.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3가지 보물 앞에 제물을 바쳐야 한다. 실제로 바쳐도 좋고 상상으로 만들어 바쳐도 좋다. 향을 손에 들고, 정신을 집중하여 기도를 드리도록 하라.



여기서는 메시아적인 영웅들인 붓다와 보살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그들만이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을 구원할 수 있다. 진화의 정점 즉 붓다의 경지에 도달한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라. 예를 들어, 자비의 화신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나 기적을 일으키는 여신 타라와 같은 존재는 이미 붓다의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계속 이 땅에 나타나기로 맹세한 보살들이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

3가지 보물[三寶]이란 붓다[佛]와 진리[法]와 수행자 공동체[僧]를 가리킨다. 스승과 스승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이 3가지 보물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람이 몸을 맡길 진정한 귀의처이다. 그래서 보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이 기도문을 읽어 줄 때는 본문에 ‘아무개’라고 되어 있는 부분과 ‘그’라는 인칭 대명사 대신 그 사람의 성별(性別)과 이름을 구체적으로 사용한다.



  오, 시방위(十方位)에 거하시는 붓다와 보살들이시여! 한없는 자비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들이시여!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중생들의 피난처 되는 분들이시여! 자비를 베푸사, 이곳으로 오시어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실제로 드리는 이 제물과 마음 속으로 드리는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무한한 지혜를 지니신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자비와 능력으로 놀라운 일을 성취하시며, 중생들의 피난처 되는 분들이시여!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지금 아무개가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그는 친구도 없이 혼자입니다. 피할 곳도 없고, 보호해 주는 사람도 없고, 동반자도 없이 혼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의 현생(現生)의 인식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는 지금 생명의 다른 영역을 향해 흑암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쌓은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에 이끌려 거대한 광야로, 망망한 대해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진화의 추진력이 밀어붙이는 대로 큰 싸움터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악마의 손에 붙들려 있으며, 죽음의 신 야마의 사자들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진화의 추진력이 이리 저리 끌고 다녀도 그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습니다. 그는 혼자서 가야만 하는 길을 가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이 가련한 아무개를 보호해 주소서. 그의 동반자가 되시어, 중간계의 깊은 어둠에서 그를 건져 주소서. 거세게 불어닥치는 까르마의 폭풍에서 그를 지켜 주소서. 죽음의 신 야마로 인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길고 좁은 중간계 나그네 길에서 그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오, 자비로운 분들이시여! 자비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고, 그를 도와주소서. 3가지 비참한 존재 차원[三惡道]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를 붙들어 주소서. 당신들이 오래 전에 맹세한 서원을 잊지 말고,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 붓다와 보살들이시여. 자비와 구원의 능력으로 아무개를 품어 주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힘에 굴복하지 않도록 견고하게 잡아 주소서. 3가지 보물이 중간계의 어려움에서 그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죽음에 당면한 사람은, 깊은 헌신과 신앙심으로 이 기도를 3번 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를 드려라.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이 기도는 삶의 윤회가 끝나기 전에는 그 효력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SAMAYA!



‘야마’는 죽음의 신이다. ‘야마의 사자들’은 그의 졸개들로써 일종의 유령과 같은 존재다. 그들은 죽음에 당면한 영혼에게 들소 머리를 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나, 죽은 자의 영혼을 야마가 다스리는 세계로 끌고 간다. 야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선악의 무게에 따라 심판하며, 그 심판 결과에 따라 다음 생에 태어날 존재 차원이 결정된다.

‘윤회’ 또는 ‘삶의 윤회’는 산스크리트어로 ‘삼사라’(samasra)라고 하는데,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여러 존재 차원에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면 윤회가 끝난다. 시간이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는 직선적인 관점에서는, 존재들의 수가 무한하기 때문에 윤회도 무한히 반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찰나에서 찰나로 이어지는 시간이 직선적인 실체가 아니다. 윤회는 직선적으로 계속되는 시간 관념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직선적으로 계속되는 시간이 사라지면 윤회도 사라진다.

탄트라 경전 마지막에 자주 등장하는 산스크리트어 SAMYAMA의 문자적인 뜻은 ‘서원’ 또는 ‘맹세’이다. 본문 내용을 강력하게 시인하고 각오를 다지며 도장을 찍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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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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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린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는 앞에 나온 <붓다와 보살들께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뒤에 나올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와 함께 이어서 드리도록 되어 있다. 전반부는 5가지 지혜를 상징하는 다섯 붓다 계열의 대표 붓다와 그의 배우자 붓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지(망상), 분노(미움), 자만심(아집), 탐욕(정욕), 질투심(시기심)이라는 5가지 독을 변형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간계를 여행하는 영혼이 드리도록 되어 있는 후반부는 중간계에서의 체험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함께, 깨달음을 얻어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들어가게 해 달라는 요청이 뒤따르고 있다. 중간계로의 전이(轉移)를 충분히 준비한 사람이라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모든 스승과 다섯 원형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들께 엎드려 절하옵나이다. 청하옵건대, 큰 사랑을 베푸사 저를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제가 심한 혼란 속에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신성한 법통을 이어 받은 스승들의 인도를 받아,

배우고 생각하고 명상하여,

흔들리지 않는 빛의 길을 가게 하소서.

그들의 수행의 짝[다끼니]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어두운 무지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이로차나 붓다(大日如來)의 인도를 받아,

궁극적인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다트비쉬바리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강한 분노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바즈라사트바 붓다(持金剛佛)의 인도를 받아,

거울 같은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붓다로카나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강한 아집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라트나삼바바 붓다(寶生佛)의 인도를 받아,

평등하게 보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마마키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지나친 탐욕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미타바 붓다(阿彌陀佛)의 인도를 받아,

분석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판다라바시니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제가 심한 질투심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아모가싯디 붓다(不空成就佛)의 인도를 받아,

성취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의 배우자 사마야타라 붓다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아래에 나오는 기도는 저승 중간계에 관련된 본문에 나온다.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이 부분이 <중간계의 곤경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에 포함된 본문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용은 5가지 독과 다섯 붓다와 그들의 배우자, 그리고 5가지 지혜에 관한 것이다.



제가 5가지 심한 독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다섯 계열의 승리자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5가지 지혜가 어우러진 투명한 빛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다섯 붓다의 배우자 붓다들이 수호자가 되어,

윤회하는 여섯 존재 차원(六道輪廻)에서 저를 건져 주소서.

제가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여,

지극히 순수한 다섯 붓다의 땅에 이르게 하옵소서.



제가 강한 본능에 이끌려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깨달음을 얻은 영웅적인 스승들의 인도를 받아,

희열이 넘치는 지혜의 투명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그들의 수행의 짝[다끼니]들이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영웅적인 스승’으로 번역한 산스크리트어 ‘비드야다라’(Vidyadhara)의 문자적인 뜻은 ‘지식의 보유자’이다. 고대 인도와 티벳에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의 연구실은 인간의 내면 세계였다. 그들은 마음과 그 작용에 통달한, 비물질 문명 세계의 중추적인 과학자들이다.

‘희열’로 번역한 티벳어 lhan skyes의 문자적인 뜻은 ‘결합의 결과’이다. 이 책 1부 해설 부분에서는 ‘오르가즘’이라고 옮기기도 했다. 이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어 사하자(sahaja)는 보통 ‘타고난’ 또는 ‘자연 그대로의’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이 말은 특별히 ‘비어-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에고가 녹아 버린 상태의 희열을 가리킨다. 육체적인 관점에서는 성적인 오르가즘에 해당하는 희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깨달음의 희열을 오르가즘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말을 사용하는 진정한 목적은, ‘비어-있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삶과 죽음이 통합된 초월적인 상태를 묘사하기 위함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제가 강렬한 환각 속에서 윤회 세계를 방황하고 있을 때,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의 인도를 받아,

두려운 환상을 극복하는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소서.

공간을 가득 채운 다끼니[女神]의 무리가 수호자가 되어,

중간계의 어려운 길을 잘 통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가 완전한 붓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푸른색 사파이어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공간[空]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백색 다이아몬드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물[水]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노란 색 황금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땅[地]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붉은 색 루비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불[火]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초록색 에머랄드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발[風]의 원소가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이처럼  무지개 빛 다섯 붓다의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5가지 원소들이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저로 하여금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이 좌정하신 장엄한 영역만을 바라보게 하시어,

소리와 빛과 광선이 저를 대적하지 못하도록 해 주소서.

모든 소리를 제가 만들어 낸 소리인 줄 알게 하소서.

모든 빛을 제가 만들어 낸 빛인 줄 알게 하소서.

모든 광선을 제가 만들어 낸 광선인 줄 알게 하소서.

제 자신이 곧 중간계의 실체임을 알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붓다의 세 몸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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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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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는 일반적인 기도다. 저승 중간계에 국한되지 않고, 탄생 중간계와 이승 중간계까지 포함하여 중간계 여행 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어려움에서 건져 줄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다음 생을 위한 출생과 출생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기원하고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기도이다.



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들이시여!

내 생명의 추진력이 고갈되어 버릴 때,

사랑하는 가족이 더 이상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중간계를 홀로 방황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무지의 짙은 안개를 걷어 주소서.



오, 붓다들이시여!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별하고 홀로 방황할 때,

공허한 환상만이 눈에 보일 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중간계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소서.



5가지 지혜의 빛이 비칠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 빛이 곧 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소서.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주님들이 모습이 나타날 때,

제가 중간계에 들어 왔다는 것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인식하게 하소서.



오, 수호 붓다들이시여!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실체 세계가 밀려오는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천둥 소리처럼 들릴 때,

그 소리가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진동으로 바뀌게 하소서.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주님들이시여!

제가 진화의 힘에 질질 끌려 다닐 때,

고통에서 건져 주소서.

제가 그 동안 쌓아 온 본능의 힘 때문에 고통 당할 때,

투명하게 빛나는 사마디의 희열을 허락하소서.



제가 새로 태어나기 위해 탄생 중간계로 접어들 때,

악마의 유혹에 빠져 헛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제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게 하소서.



무섭게 울부짖는 맹수들의 포효가 들릴 때,

그 소리가 다르마의 울림으로 바뀌게 하소서.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진동으로 바뀌게 하소서.

제가 눈, 비, 바람, 흑암에 쫓겨다닐 때,

밝게 빛나는 지혜의 눈을 뜨게 하소서.



중간계를 여행하는 모든 중생들이

서로 미워하지 않고,

모두 좋은 세계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나이다.

저로 하여금, 탐욕에서 비롯되는

배고픔과 추위와 더위의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몸을 섞고 있는 미래의 부모를 보게 될 때,

그들은 자비로운 주님과 그의 배우자로 보게 하소서.

제 자신이 태어날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소서.

상서로운 표징을 지니고,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중간계 존재가 환생하기 위해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로 보고, 어머니를 아발로키테스바라의 짝인 타라 붓다로 보는 시각화 수행이 적용된다. 탄트라 문헌에서는 ‘부모’로 번역한 티벳어 ‘야브 윰’yab yum이 성적인 결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붓다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제가 뛰어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남으로써,

저를 보는 모든 사람이 즉시 구원받게 하소서.

제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로 들어가게 하소서.

부정적인 진화의 힘을 거부하고,

긍정적인 진화의 힘만 따르며 키우게 하소서.



제가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이 생에서의 수호 붓다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태어나자마자 말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시고,

전생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소서.



높고, 낮고, 평범한 모든 가르침을

듣고 보는 순간 즉시 깨닫게 하소서.

제가 태어난 땅을 축복하시어,

모든 중생이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승리자들이시여!

저와 다른 모든 중생들을 당신들과 똑같게 변화시켜 주소서.

당신들과 똑같이 수많은 수행자를 거느리고,

당신들과 똑같이 장수하며,

당신들과 똑같이 순수한 땅에서 살며,

당신들과 똑같이 상서로운 표징을 지니게 하소서.



오, 무한히 자비로운 분이시여!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만타바드라(普賢菩薩)시여!

완성된 실체의 진리의 힘으로,

그리고 집중을 성취한 탄트라 성자의 축복으로,

제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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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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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섯 중간계로 이루어진다. 이 기도는 여섯 중간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깨달음과 자유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오! 이제 이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게으름을 버리고, 마지막 인생이라는 생각으로 살리라.

배우고, 생각하고, 명상하는 수행자의 길에 꿋꿋이 서서

현상과 마음의 실체를 밝히고,

깨달음의 세 몸을 실현시키고 말리라!

일단 인간의 몸을 입게 되면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리니,

허접 쓰레기 같은 것은 좇아 다니지 않으리라.



오! 이제 꿈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시체처럼 우둔하게 망상 속에서 헤매는 잠을 떠나,

온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실체를 체험하는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들어가리라.

꿈 속에서도 정신을 차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꾸리라.

짐승처럼 정신을 잃고 잠에 빠지지 않고,

잠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는 수행을 소중히 여기리라.



오! 이제 명상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이리 저리 흩어지는 산만함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놓지도 않고 통제하지도 않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초점을 맞추리라.

그리하여 창조 단계와 완성 단계를 확고하게 성취하리라.

이제 잡다한 생각과 행위를 포기하고,

한 점에 집중하는 명상 상태에 들리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탐착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오, 이제 죽음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진리 속으로 들어가리라.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지 않는 내적인 각성을 얻으리라.

지금 내가 버리고 떠나는, 피와 살로 된 이 육체는

일시적인 환영(幻影)이었음을 깨달으리라.



오, 이제 저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무엇이 나타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알아차리리라.

모든 것이 중간계의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리라.

지금까지의 진행이 일단 정지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내가 만든 환상 속에 나타나는,

자애롭고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오, 이제 탄생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마음과 뜻을 한 데 모아,

긍정적인 진화의 추진력을 강화시키리라.

자궁 입구를 막고,

부정적인 상황에 태어나는 것에 저항하리라.

긍정적인 생각과 용기가 필요한 이 때에,

질투심을 버리고,

결합하고 있는 모든 짝들을

나의 영적인 스승과 그의 짝으로 보리라.



위대한 성자들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죽음이 다가 오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쓰레기 같은 세상 일에 노예처럼 끌려 다니다가

빈 손으로 떠나는 가련한 인생들아!

거룩한 신들의 가르침을 왜 외면하는가?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스스로 속고 속이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 제 6 장 □



중간계 여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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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중간계에서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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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통해 나타난 붓다의 세 몸께 절하나이다:

무한한 빛이며 진리의 몸이신 아미타바께 절하나이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연꽃 붓다들의 깨달은 몸 앞에 절하나이다.

중생들의 구원자로 나투시는 파드마 삼바바께 절하나이다.



산스크리트어 이름 ‘아미타바’의 문자적인 뜻은 ‘무한한 빛(無量光)’이다. 아미타바는 서쪽에 있는 붓다의 땅 수카바티를 지배하는 붓다이며, 탄트라에서는 연꽃 계열 붓다의 우두머리로 등장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그를, 붓다의 속성 중에서 궁극적인 실재성을 상징하는 진리의 몸(法身)이라고 고백한다. 연꽃 계열 붓다와 보살들은 붓다의 속성 중에서 초월적인 지혜를 상징하는 깨달은 몸(報身)과 관련되어 있다. 파드마 삼바바는 인간으로 나타난 붓다의 나투는 몸(化身)이다. 수행자는 스승을 붓다의 세 몸이 구현된 존재로 보고 경의를 표한다. 현대인들로서는 자기가 편안하게 느끼는 존재를 대신 설정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삼위일체나 유일한 하느님을 경배와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괜찮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평범한 수행자들로 하여금 중간계를 통과하는 동안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다.



[준비]



뛰어난 수행자라면 적절한 수행을 통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못한 평범한 수행자라면, 죽음 중간계에서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함으로써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은 티벳어 ‘포바’pho-ba의 번역이다. 포바는 지극히 미묘한 의식이 정수리를 통해 육체에서 빠져나가 붓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고도로 숙련된 요기와 요기니들만이 할 수 있는 수행이다. 이 수행법은 입문을 해야만 배울 수 있다. 육체와 미묘한 신경 에너지인 의식을 분리하는 수행을 오랜 세월 반복함으로써 의식을 성공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은,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입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 수행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포바’는 흔히 ‘나로빠 6법’이라고 하는 나로빠가 체계를 세운 6가지 요가에도 포함되어 있다. 의식전이행법(意識轉移行法)이 곧 그것이다. 역자주]



의식을 이동시키는 수행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중간계를 여행하는 동안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에 계속 귀를 기울이도록 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의 징조를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 나오는 내용을 숙지하여, 차례로 나타나는 죽음의 징조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의 징조를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은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과 함께 <명상을 통한 자유> 문헌에 포함되어 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죽음의 징조, 꿈에 대한 해석, 의학적인 관찰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을 기초로 죽음을 예견할 수 있다.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들로 미루어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죽은 자로 하여금 의식의 이동을 통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수행을 하도록 일러 주라. 의식이 성공적으로 이동되면,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식의 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신 옆에서 이 책을 또렷한 발음으로 읽어 주라.

시신이 없는 경우에는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침상이나 의자 옆에서 읽어 주라. 그가 그대 앞에 앉아서 그대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진리의 힘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권고한 다음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주라.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이나 친지들이 슬퍼하거나 울면 안된다. 조용히 있어야 한다. 슬퍼하거나 울면 죽은 자의 영혼이 혼란스러워진다.

시신이 곁에 있으면, 외적인 숨은 멎었지만 내적인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동안, 그의 스승이나 동료 또는 믿고 의지하던 친척이나 친구가 입술이 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 책을 읽어 주도록 하라.



[실제적인 적용]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죽은 자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굵은 큰 글씨로 인쇄된 부분만 읽어 주면 된다. 나머지는 언제 어떻게 읽어 줄 것인가를 알려 주는 해설이다.

먼저 3가지 보물(三寶) 앞에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성대한 제물을 바친다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마음으로 상징적인 제사를 드려라. 그런 다음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3번 또는 7번 반복하라. 그리고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와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를 선율에 맞추어 큰 소리로 암송하라.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그 다음에 3번이나 7번 반복해서 읽어라. 읽는 회수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3가지 보물’은 붓다(佛)와 그의 가르침(法)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僧)를 가리킨다. 본문은 제단을 마련하고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 불상과 때에 따라서는 불경을 함께 모셔 놓은 제단 위에 제물을 바친다. 꽃으로 장식한 제단 위에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바친다. 정성껏 준비한 다른 제물도 올려놓는다. 외적인 제물이 없이, 시각화 상상을 통해서도 제사를 드릴 수 있다.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우주를 시각적으로 그리고 깨달은 존재들께 그 우주를 제물로 바친다. 죽은 사람이 그대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종교에서 거룩하게 여기는 상징이나 경전이나 제물을 사용해서 이 과정을 진행한다. 죽은 사람이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기분 좋게 여길 만한 환경을 상상 속으로 만들어 이 과정을 진행한다. <붓다와 보살들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 <중간계 여행의 두려움에서 구원을 청하는 기도>,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는 5장에 본문이 실려 있다.



[죽음 중간계에서 경험하는 투명한 빛]



여기서 경험하는 온 천지에 충만한 ‘투명한 빛’은 햇빛이나 달빛과는 다르다. 어두움도 아니다. 본문에서 이 단락의 제목은 <저승 중간계에서 드리는 기도>로 되어 있다. 저승 중간계와 죽음 중간계는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는 죽음 중간계에서의 경험을 말하고 있는데, 제목 때문에 저승 중간계의 경험 인줄 착각할 우려가 있다. 죽음 직후의 짧은 기간인 죽음 중간계는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투명한 빛’ 중간계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없다. 투명한 빛 중간계는 의식이 미묘한 신경 시스템의 중앙 통로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기 전에 나타난다. 의식이 완전히 빠져 나온 다음에는 두 번째 단계의 죽음 중간계가 시작된다. 의식은 정수리를 통해 빠져 나올 수도 있고 다른 길로 빠져 나올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죽음 중간계의 첫 번째 단계를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라고 부르고, 두 번째 단계를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라고 하겠다.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는 호흡이 멎은 직후에 나타나며,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죽음 중간계는 그 뒤를 이어 나타난다.

죽음의 전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면 죽음 중간계 기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임을 알아야 한다. 의식을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아니면 최소한 붓다의 땅과 깨달음을 향해 방향을 돌리도록 하려면 이 기간이 최적기이다.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은 죽는 순간에 본능적인 습관과 무지와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누가 죽을 때, 죽는 사람이 병원 응급실 같은 혼란스러움 속에서 놀라지 않게 하려고 조용한 분위기를 만든다.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숨이 멎은 다음에도 여러 시간 그런 분위기를 유지한다.

티벳어 본문에는 각 단락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고 정확하게 읽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본문을 간단명료하게 하려고 번잡스러운 소제목은 모두 뺐다.



1.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



‘중간계’라는 말은 적어도 3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약간 혼동될 우려가 있다. 첫째, 가장 일상적인 의미는 죽음에서 재탄생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가리킨다. 둘째, 전문적인 의미로는 삶과 죽음과 재탄생의 전 과정인 여섯 중간계를 일컫는다. 여섯 중간계는 이승 중간계, 꿈 중간계, 명상 중간계,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중간계라는 말 속에는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가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여섯 중간계 중에서 어떤 특정한 시기에 경험하게 되는 특정한 ‘중간계 상태’도 ‘중간계’라는 말로 표현한다.

죽음 중간계는 다시 두 단계의 중간계, 즉 중앙 통로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와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로 나누어진다. 저승 중간계 역시 자애로운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와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중간계로 구분된다.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의 두 단계는 다시 첫째 날, 둘째 날 하는 식으로 나누어진다. 본문에서는 이 모두를 중간계라는 말로 일컫고 있다. 이 책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본적인 여섯 중간계 이외의 구분은 ‘(무슨 무슨) 중간계 단계’라는 말로 표현했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중간계라는 말을 빼 버리기도 했다.

이 책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읽어 주어야 한다. 투명한 빛이 무엇인지 이해는 했으나 체험하지 못한 사람, 체험은 했으나 수행이 부족하여 체험을 깊이 심화시키지 못한 사람, 또는 에고 의식이 강해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읽어 주라. 그대가 읽어 주는 것을 듣고 그들이 투명한 빛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다른 중간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승하여,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진리의 몸을 성취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의 위력이 나타나 있다. 중간계 상태의 의식은 매우 유동적이기 때문에, 실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완전한 변형이 일어난다. 진리를 듣고 이해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은 생전에 죽은 사람을 가르쳤던 스승이 읽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같은 신앙 고백을 하던 영적인 형제 자매가 읽어 주도록 하라. 그들이 그 자리에 없으면, 같은 영적인 전통에 속한 누군가가 읽도록 하라. 그것도 불가능하면, 아무나 큰소리로 또박또박 여러 차례 읽어 주도록 하라. 그러면 죽은 사람은 생전에 스승이 가르쳐 준 것을 기억하고, 투명한 빛을 인식함과 동시에 즉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티벳어는 가르침이나 교훈에서 인칭 대명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인칭 대명사를 3인칭 주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도 남녀 성의 구별이 없다. 대부분의 영적인 스승이 남자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티벳에는 여자 스승 또는 여자 라마도 있다. 죽음에는 성의 구별이 없다. 남자가 죽는 만큼 여자도 죽는다. 이 번역에서 남성 인칭 대명사만 사용한다면, 티벳 사람들이 마치 성차별주의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번번이 ‘그 또는 그녀’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이 번역에서는 남성 인칭 대명사와 여성 인칭 대명사를 자유롭게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읽어 줄 시기는 다음과 같다. 숨이 멎고, 전신에 퍼져 있던 프라나[氣]가 중앙 통로로 퇴각하면서 의식이 투명한 빛을 경험하게 된다. 프라나가 중앙의 좌우 통로[이다와 핑갈라]로 퇴각할 때 중간계의 환상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 책을 읽어 주어야 한다. 외적인 숨이 멎은 다음에도 내적인 숨은 (중앙 통로 안에) 남아 있다. 이 때가 이 책을 읽어 줄 적절한 시기이다.

숨이 멎으려는 순간에 의식이 이미 성공적으로 이동되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읽어 주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진리의 길을 찾을 때가 왔소. 지금 그대의 숨이 멎으려 하고 있소. 숨이 멎자 마자 첫 번째 중간계의 투명한 빛이 나타날 것이오. 그 빛에 대해서는 그대의 스승에게 들은 바가 있을 것이오. 허공처럼 비어 있고, 중심도 없고 경계도 없는, 투명한 그 빛은 실재의 본질이자 그대의 순수한 마음이라오. 그 빛이 나타나면, 그 빛이 그대 자신인 줄 알고 그 속에 머물러 있도록 하시오. 이 점에 대해서는 그 빛이 나타날 때 다시 일러 드리리다.



중간계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책 8장에 실려 있는 <지적인 이해력을 통해, 있는 그대로를 봄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된 자세한 설명이 있다. 투명한 빛으로 나타나는 순수한 각성은 형태도 내용도 없다. 주관적인 느낌도 아니도 객관적인 대상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원성에 사로잡힌 사람은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을 구별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투명한 빛이 나타날 때, 그것을 외적인 대상으로 여긴다. 그 빛이 자기 자신의 순수한 각성인 줄을 모르고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빛 속에 머물지 못한다. 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이 곧 자기 자신, 즉 에고가 사라진 자신의 본성임을 인식하도록 권면하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는 사람이 마음 속으로 확신할 수 있도록, 외적인 숨이 멎기 전에 이 가르침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도록 하라. 숨이 멎으려고 하면 사자가 누워 있는 자세처럼 오른 쪽으로 돌려 눕히고, 목에 있는 양쪽 경동맥을 눌러라. 피가 통하지 않도록 세게 눌러서 잠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 프라나가 중앙 통로로 들어가 다시 빠져 나오지 않고, 정수리에 있는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갈 것이다.



숨이 멎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로 숙련된 경험자가 아니고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른 쪽으로 돌려 눕히고 경동맥을 압박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브라흐마의 구멍’은 정수리에 있는 숫구멍[頂門]을 가리킨다. 미묘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는 영혼은 그 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영혼을 이동시키는 수행을 통해서도 빠져나갈 수 있고,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함으로써도 그렇게 빠져나갈 수 있다.



이때 앞에서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어라. 영혼이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순간,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로 들어감과 동시에 진리의 몸에 대한 순수한 각성이 생긴다. 이 경험은 누구나 한다. 외적인 숨이 멎은 후에도 내적인 숨은 한동안 남아 있다. 이때 온 몸에 퍼져 있던 프라나가 중앙 통로로 퇴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의식을 잃었다’고 말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어떻게 살았느냐, 또는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를 활성화시키는 수행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개인적으로 차이가 난다. 수행을 통해 정신의 안정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던 사람이나 의식-에너지 통로를 상당히 활성화시킨 사람에게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앞에서 읽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그래서 그의 결단이 확고해지게 하라. 눈, 코, 귀 등의 감각 기관에서 누런 액체가 흘러나올 때까지 거듭거듭 읽어 주어라. 악으로 일관된 삶을 산 사람이나 의식-에너지 통로가 막혀 있는 사람에게는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상태가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만 지속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전과 탄트라 문헌은, 외적인 숨이 멎은 후 의식이 중앙 통로에 머무는 기간을 4일 반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죽는 사람이 이 상태에 머무는 동안 투명한 빛에 대해서 거듭거듭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설명해 주는 방법은 이렇다. 생전에 받은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죽음의 해체 과정을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의 스승이나 영적인 형제 자매 또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곁에 앉아서 해체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나타나는 징조들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신기루는 흙의 요소가 물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자욱한 연기는 물의 요소가 불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반짝이는 반딧불은 불의 요소가 바람의 요소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밝은 촛불은 바람의 요소가 바람의 요소가 의식[空]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달빛 밝은 하늘은 의식이 1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햇빛 찬란한 하늘은 1단계 직관이 2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순수한 어두움은 2단계 직관이 3단계 직관으로 해체되고 있는 징조라오. 투명한 새벽 빛은 3단계 직관이 투명한 빛 속으로 해체되어 들어가는 징조라오.



본문에는 “신기루를 비롯한 여러 징조들”로 되어 있는데, 번역에서는 8단계 해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징조들을 재구성하여 삽입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이 징조들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징조들을 이해하면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데 따른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징조가 모두 나타난 다음에는, 그의 깨달은 존재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라. 만약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승려라면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말하라.



   존경하는 스님! 스님의 영적인 인식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깨달은 존재의 마음’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치타bodhichitta의 번역이고, ‘영적인 인식’은 보디치토트파다bodhicittotpada의 번역이다. 둘 다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하기로 맹세한 메시아적인 영웅, 보디사트바(菩薩)의 영적인 특징이다. ‘깨달은 마음’과 ‘영적인 인식’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행복으로 인도하겠다는 결심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다. 보디사트바의 사랑과 자비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지혜와 모든 중생이 무한한 상호 관계 속에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다. 티벳 사람들은 이타적인 태도가 자신의 운명에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역설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영적인 인식을 되새기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승려가 아닌 일반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다름과 같이 말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이 소위 ‘죽음’이라는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영적인 인식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오.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도록 하시오. “아! 이제 죽는구나. 이 죽음을 기회로 삼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사랑과 자비로 충만한 깨달은 존재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를 가득 메운 중생들을 위해 완전한 불성을 성취하고 말리라.” 특히 이런 생각을 품도록 하시오. “모든 중생을 위해, 지금 내가 경험하는 죽음의 투명한 빛을 붓다의 진리의 몸으로 인식하리라. 이 체험 속에서, 마하무드라[大印]의 지고한 깨달음을 얻으리라.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혹시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할지라도, 중간계를 지나는 동안 이것이 중간계라는 것만큼은 인식하리라. 그리하여 중간계에서 마하무드라의 통합된 몸을 성취하여, 무한한 우주를 가득 메운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리라. 필요한 때 필요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리라.” 그대는 이같은 영적인 인식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시오. 그대가 생전에 들은 영적인 가르침과 수행을 통해 얻은 체험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산스크리트어 마하무드라mahamudra의 문자적인 뜻은 ‘위대한 도장(大印)’이다. 궁극적인 실재인 우주적인 ‘비어-있음’에 대한 체험적인 깨달음을 가리킨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비어-있음’의 본질인 투명한 지혜와 하나 됨으로써 우주적인 오르가즘을 체험한다. 마하무드라는 ‘위대한 완성’이라는 말과 함께, 탄트라 수행의 최고 경지를 일컫는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분명한 발음으로 읽어 주도록 하라. 그의 마음이 한 순간이라도 흩어지지 않도록, 간청하는 심정으로 읽어 주어라.

외적인 숨이 완전히 멎으면, 목에 있는 경동맥을 세게 누르고 다음과 같이 말하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승려나 영적으로 높은 경지의 수행을 쌓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하라.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지금 당신에게 근원적인 투명한 빛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도록 하십시오. 부디 그 빛과 하나 되도록 하십시오.



승려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가 아니라면 이렇게 말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듣기 바라오. 지금 근원적인 실재의 순수하고 투명한 빛이 그대에게 비치고 있소. 그것을 알아차리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 빛은 본래 투명하게 ‘비어-있는’ 그대 자신의 의식이라오. 그대의 의식은 원래 구성 물질도 없고, 어떤 특징이나 색깔도 없는 궁극적인 실재 그 자체라오. 투명하게 ‘비어-있는’ 그대의 의식[空]과 어머니 사만타바드리(普賢) 붓다는 원래 하나라오. 그대의 의식이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오. 그대의 의식은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소.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는 그대 의식의 각성이 곧 아버지 사만타바드라(普賢) 붓다라오. 그대의 본래 의식은 물질적인 실체가 없는 ‘비어 있음’이라오.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고 있는 ‘비어-있음’, 즉 그대의 각성된 의식이 곧 붓다의 진리의 몸(法身)이라오. 그대의 의식과 투명하게 ‘비어-있는’ 무한한 빛은 구별할 수 없다오. 그대의 의식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원한 빛의 붓다[아미타바]라오. 이 점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하시오. 그대의 순수한 의식이 곧 붓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대의 의식이 모든 붓다들의 깨달음 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하도록 하시오.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산스크리트어 이름 사만타바드라와 여성형 사만타바드리의 문자적인 뜻은 ‘완전한 선’(all-around goodness)이다. 사만타바드라는 아바탐사카 수트라(Avatamsaka-sutra 華嚴經)에 나오는 유명한 보살이다. 그는 아무리 작은 것이든지 아무리 큰 것이든지, 어느 곳에든지 자유자재로 깃들어, 동시 다발적으로 선을 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아원자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중생들을 아원자 세계의 붓다들께 인도함과 동시에, 현상 세계에 나타나 현상 세계의 중생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어머니 사만타바드리’와 ‘아버지 사만타바드라’의 결합은 투명하게 비어 있는 의식의 본질[空]과 그에 대한 각성[진동하는 빛]의 영원한 결합을 상징한다. 그 결합체가 곧 진리의 몸(法身)이며, 결합의 결과가 무한한 희열(法悅)이다.

이 부분의 설명은 요가 탄트라의 4단계 입문 중에서 제 3단계 입문(智慧入門)의 내용과 비슷하다. 궁극적인 실재(法身)는 태어난 것도 아니고, 노력으로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실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영원토록 각성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깨닫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존재가 이미 깨달음 상태에 있다. 필요한 것은 궁극적인 실재와 자신이 지금 하나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뿐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것을 똑똑한 발음으로 명확하게 읽어 주어라. 3번이나 7번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첫 번째 읽어 줄 때는 생전에 배운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읽어 줄 때는 투명하게 빛나는 자신의 순수한 각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읽어 줄 때는 자신의 본성과 진리의 몸이 하나임을 인식하고 그 결합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있다.



2.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중간계



만약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그대가 읽어 주는 내용을 의심하고,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 번째 투명한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외적인 숨이 멎고 나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가 지난 다음에 나타난다. 프라나는 생전에 쌓은 선과 악의 진화력[까르마]에 따라 오른 쪽이나 왼 쪽 통로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육체에 있는 여러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의식은 그 순간 투명한 상태가 된다. 위에서 말한 ‘한 끼 밥 먹는 시간 정도’라는 것은, 중앙 통로의 상태와 생전의 수행 정도에 따라 더 길 수도 있고 더 짧을 수도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 때,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자기가 지금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지 못하는 혼란 때문에,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한다. 그는 마치 자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는 소리도 듣는다. 그대는 그가 쌓은 진화력에서 비롯되는 두려운 환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를 찾아오기 전에, 다음 가르침을 읽어 주어야만 한다. 이 때 이미 탄트라 수행의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고,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있다. 완성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이름을 3번 부른 다음 위에서 언급한 투명한 빛에 대한 가르침을 반복해서 읽어 주도록 하라. 창조 단계 체험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의 수호불(守護佛)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도록 다음과 같이 알려 주어야 한다.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의 의식은, 몸에서는 빠져나갔지만 아직 시신 주위를 떠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상태는 숨이 완전히 멎은 후 약 30분 후부터 여러 날 계속될 수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옮기거나 매장하지 않고  여러 날 그대로 둔다. 물론 더운 지방에서는 시체가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수행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라마승의 경우 앉은 채로 죽는 일이 있는데, 상당 기간 부패하지도 않고 앉은 자세로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완성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미묘한 신경계의 의식-에너지 통로가 활성화되어 있다. 통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 제거되고, 미묘한 내적인 차원과 의식이 몸 밖으로 나간 상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므로 투명한 빛을 즉시 자기 자신의 의식과 동일시할 수 있다. 창조 단계 수행을 한 사람은 시각화하는 능력이 계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수호불과 성스러운 환경인 만다라에 익숙해져 있다. 수호불의 형상과 만다라의 구조에 대한 시각화 상상은 프라나와 의식-에너지 통로와 빈두의 각성을 촉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수호불을 시각적으로 상상하고, 그와 결합하라고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그대의 수호불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그에게 집중하도록 하시오. 마음이 흩어지면 안 됩니다. 의지력을 총동원하여 그대의 수호불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호불의 모습을 뚜렷이 시각화하되, 물질적인 실체로 여기지는 마시오. 물에 비친 달처럼 실체가 없지만,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집중하시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말해 주도록 하라.



   위대한 자비의 주님께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시오.



‘평범한 사람’은 체계적인 시각화 수행이나 변형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들에게는 육체적인 에너지와 의식을 다른 상태로 변형시킬 능력이 없다. 하지만 그런 수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문화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붓다나 보살들에 대해서는 친숙한 상태이다. 따라서 자신의 명상 대상인 수호불을 선택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나 국가적인 상징을 명상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장소를 만다라로 여기고 거기에 마음을 집중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는 대천사장격인 아발로키테스바라(觀世音菩薩)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자비의 주 아발로키테스바라를 구원자로 여긴다. 모든 중생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고통에서 건져 주는 존재가 바로 아발로키테스바라이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나 모세, 또는 무하마드나 크리슈나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와칸 탕카, 오딘, 제우스, 또는 우주적인 어머니를 상징하는 그 어떤 여성신을 대상으로 삼아도 된다. 자비와 궁극적인 실재가 인격화된 존재로 선택된 신이라면, 그에 대한 명상은 영혼을 평안하게 해준다. 또 그와의 결합을 통해 궁극적인 실재와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어떤 환상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알려 주어야 한다. 놀랄 만한 일이 벌어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구원자의 모습에 집중함으로써, 그들 위대한 구원자들의 본질인 자비를 받아들일 준비가 갖추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



중간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던 사람도, 분명히 이 가르침을 통해 중간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생전에 스승으로부터 중간계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어도 수행을 통한 체험이 깊지 않은 사람, 혼자서는 중간계의 투명한 빛과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스승이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이 가르침을 읽어 줌으로써 일깨워 주어야 한다. 생전에 이 진리를 깨닫고 통찰력을 얻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고 차원이 낮은 단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 가르침을 꼭 읽어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신의 맹세와 서원을 잊으면 대단히 비참한 상황에 떨어진다. 이것은 어떤 종교적인 전통이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따라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어 본능의 충동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의 생명 에너지는, 깨달음을 얻은 만큼 확장되고 유연해진다.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영적인 상태가 이렇게 유연하고 개방적인 상황에서 어둠을 향해 방향을 전환한다면 자연히 극단적인 어두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상태가 개방적이고 유연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지옥 상태에 들어가기도 그만큼 쉬운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첫 번째 나타나는 투명한 빛을 인식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몸 밖에서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두 번째 중간계에 대한 이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각성되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중간계에서 가르침을 받을 때, 자신이 죽은 것인지 살아 있는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던 불투명한 의식이 갑자기 투명해진다. 이 상태를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이라고 한다. 이 때 가르침이 성공적으로 전달되면 어머니 실재와 자식 실재가 융합되고, 진화의 추진력[까르마]이 힘을 잃는다. 햇빛이 어두움을 정복하는 것 같이, 투명한 진리의 빛이 진화의 추진력을 소멸시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신비한 몸은 마음으로 만든 미묘한 에너지 몸으로써 꿈에서 경험하는 몸과 비슷하다. 요가 탄트라에서는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이 몸을 만든다. 중간계에서는 까르마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신비한 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중간계에서 <중간계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면, 그 몸이 완성 단계 수행의 제 3단계에서 만들 수 있는 투명하게 각성된 몸으로 즉시 변형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한 진화가 이렇게 엄청나게 가속되는 이유는, 중간계 상태의 몸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유연성과 개방성 때문이다.

‘어머니 실재’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궁극적인 실재 즉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가리킨다. 이 궁극적인 실재가 만물의 모체이다. 그래서 ‘어머니’라고 한다. ‘자식 실재’는 인간의 의식 속에 있는 투명한 빛을 말한다. 이 빛은 인간의 개념적인 지식에 가려 희미하게 밖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주관과 객관을 구별하는 이원성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상태의 투명한 빛을 경험하는 몸을 ‘불순물이 섞인 신비한 몸’이라고 한다. 이 몸은 투명한 ‘어머니’ 빛과 하나 될 때 완전히 투명해진다.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 ‘아버지’로서의 신비한 몸과 ‘어머니’로서의 투명한 빛이 결합할 때 탄트라 요가 최고 단계인 통합이 이루어진다. 이 통합이 마하무드라이자 위대한 완성이며, 진화의 정점인 붓다의 경지이다.



‘두 번째 중간계’라고 부르는 상태가 정신적인 몸[心體] 앞에 나타날 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의식은 그대가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이 가르침을 읽어 주면 효과가 있다. 아직은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방향을 바꾸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첫 단계 중간계에서는 근원적인 투명한 빛을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인식하여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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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이 나타나는

저승 중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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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직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된다. 각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해당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의 내용을 듣고 이해하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는 말로 끝맺는다. 신비한 통찰력이 있는 경험 많은 라마승이나 영적인 스승은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그가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이어지는 가르침을 계속 읽어 줄 필요가 있다.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잘못 판단하여 절대 자유의 경지로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이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세 번째 중간계’인 저승 중간계로 접어든다. 이 세 번째 중간계에서 까르마가 만들어 내는 환상이 나타난다. 이때 저승 중간계에 관한 가르침을 읽어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가르침은 대단히 큰 힘과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때 가족들이 슬퍼하며 우는 모습을 볼 것이다. 식구들의 밥상에 자기 자리가 더 이상 마련되지 않고, 옷이 벗겨져 있으며, 자기가 쓰던 침상이 옮겨져 있는 것도 볼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를 보지 못한다. 그는 가족들이 애통해 하며 자기를 부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가족들은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면 그는 절망감에 빠져 떠날 수밖에 없다. 이때 그의 의식 속에 여러 가지 소리와 여러 색깔의 빛과 광선이 나타난다. 그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며 당황하게 된다. 이때 저승 중간계에 관한 이 가르침을 읽어 주어야 한다. 그의 이름을 부른 다음, 분명하고 똑똑한 목소리로 이렇게 일러주도록 하라.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 아무개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 차려 똑바로 들으시오. 중간계는 여섯 종류가 있소. 이승 중간계, 꿈 중간계, 명상 중간계,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그리고 탄생 중간계가 있소.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죽음 중간계, 저승 중간계, 탄생 중간계라는 3가지 중간계를 경험하게 된다오. 그대는 어제까지 근원적인 투명한 빛이 비치는 죽음 중간계를 지나왔소. 그러나 그대는 그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 여기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라오. 앞으로 저승 중간계와 탄생 중간계가 그대 앞에 나타날 것이오. 지금부터 그 두 중간계에 대해 내가 일러주는 말을 명심하여 실패가 없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있는 중이오. 이런 일은 그대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일이오. 그러니 이승의 삶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머물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럴 수 없다오. 그대가 끝까지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윤회 세계를 방황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오. 욕망을 버리시오! 이승의 삶에 매달리지 마시오! 3가지 보물만 생각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저승 중간계에서 어떤 무서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음에 일러주는 말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그 뜻을 마음 속에 깊이 새기고 앞으로 전진하시오.



오, 이제 저승 중간계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구나.

무엇이 나타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 낸 환상임을 알아차리리라.

모든 것이 중간계의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리라.

지금까지의 진행이 일단 정지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내가 만든 환상 속에 나타나는,

자애롭고 무서운 모습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 부분은 <여섯 중간계에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기도>에서 따온 것이다.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이제 꿈 속의 세계 같은 중간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그의 감각은 대단히 예민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소리가 들리거나 어떤 모습이 나타나면 대단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잠재되어 있던 본능적인 직관력이 빠른 속도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두려운 체험이든지 즐거운 체험이든지 그 느끼는 정도가 대단히 강렬하다.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잠재적인 본능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중간계 상태에 들어가면, 자신이 두려워하는 상태가 현실로 나타난다. 그때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잠재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감각의 문을 닫고, 점점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두려운 현상을 만들어 내고, 두려운 현상이 또 다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상황의 악순환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어떤 두려운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기도를 뜻을 생각하면서 큰 소리로 드리도록 하시오. 어떤 무서운 환상이 나타나더라도, 그 모두가 그대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그대의 육체와 마음이 분리될 때, 봄에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눈부신 환상이 나타날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오. 하지만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마시오. 마음을 진정하시오. 그대의 몸은 피와 살로 된 물질적인 육체가 아니라 마음의 몸이라오. 그러므로 그 무엇도 그대를 해칠 수 없다오. 눈부신 빛이 비치고, 천둥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릴지라도 그대는 조금도 다치지 않는다오. 그대는 죽을 수가 없소. 두려운 소리가 들리고 무서운 환상이 나타날 때, 그 모든 것이 그대의 바닥 의식이 만들어 낸 것임을 꼭 기억하도록 하시오. 그대는 지금 중간계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오.

   오, 고귀한 가문의 자손이여! 나타나는 현상을 그대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소. 그대가 생전에 수행을 많이 하고, 아무리 높은 경지의 체험을 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오.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그대 자신의 바닥 의식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빛과 소리에 놀라 떨 수밖에 없다오. 들리는 소리와 나타나는 빛과 환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윤회 세계를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오.



[첫째 날]



본문에는 ‘첫째 날’이라는 표시가 없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날에 표시는 ‘둘째 날’만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번역에서는 명확성을 도모하고, 실제 사용하는데 편리하도록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날을 표시했다. 다음에 나오는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4일 반 동안 무의식 상태에 있다가 깨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4일 반은 시간으로는 108시간인데, 정확한 시간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죽는 날부터 49일 째 되는 날까지 꾸준히 읽어 주면 된다.

하루 하루 날이 진행됨에 따라, 만다라 즉 붓다의 5가지 지혜로 이루어진 신성한 우주와 차례로 만나게 된다.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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